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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xa0

맹세할 서(言/7) 죽을 사(歹/2) 아닐 불(一/3) 두 이(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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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정직(是謂是 非謂非 曰直/ 시위시 비위비 왈직)’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전 荀子(순자)에 나오는 말이다.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이 말이 더 어려운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남을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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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과 비교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란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재판은 그 중요성이 무엇보다 더하다. ‘돈에 따라 흑을 백으로 바꾸는 기술‘이란 혹평이 따르더라도 자신이 잘못내린 판결로 목숨까지 끊는 이야기에는 숙연함이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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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서약했으면 죽어도 바뀔 수 없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의지가 결연함을 보여준다. ‘史記(사기)’ 循吏(순리)열전에 나오는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 李離(이리)란 사람이 그러했다. 文公(문공)때 형벌에 관한 일을 심리하는 獄官(옥관)이었던 이리는 공정한 일 처리로 이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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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규정에 따라 똑 같이 죄를 따지고 벌을 주었다. 어느 때 이리는 사건 기록을 살피다 부하의 보고만 믿고 자신이 잘못 판결하여 무고한 사람을 처형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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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도록 했다. 문공은 이리에게 부하 관리가 잘못했다고 하여 상관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다면 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리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잘못 판결한 죄는 자신의 죄이며, 무고한 사람을 사형시킨 것은 자신도 사형입니다(失刑則刑 失死則死/ 실형즉형 실사즉사)’라 말하며 칼에 엎드려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잘못 판결했더라도 죽음으로 규정을 지킨 의지의 이리에게서 서약과 죽음(誓死)이 다르지 않다(不二)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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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서도 이에 못지않은 사람이 있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曉峰(효봉)스님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 법관을 하던 중 한 피고인에 사형을 내렸다가 심한 가책과 회의감을 느끼고 엿장수로 유랑 걸식하다 출가했다 한다. 독립된 법관이 정치의 눈치를 본다거나 상급 행정처의 협조 요청에 응한 판결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는 일이 얼마 전까지 시끄러웠다. 재판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법관이 소신을 굳게 지키는 판결만 있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6일 수요일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맹세할 서(言/7) 죽을 사(歹/2) 아닐 불(一/3) 두 이(二/0)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정직(是謂是 非謂非 曰直/ 시위시 비위비 왈직)’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전 荀子(순자)에 나오는 말이다.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이 말이 더 어려운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남을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과 비교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란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재판은 그 중요성이 무엇보다 더하다. ‘돈에 따라 흑을 백으로 바꾸는 기술‘이란 혹평이 따르더라도 자신이 잘못내린 판결로 목숨까지 끊는 이야기에는 숙연함이 더한다.

한번 서약했으면 죽어도 바뀔 수 없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의지가 결연함을 보여준다. ‘史記(사기)’ 循吏(순리)열전에 나오는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 李離(이리)란 사람이 그러했다. 文公(문공)때 형벌에 관한 일을 심리하는 獄官(옥관)이었던 이리는 공정한 일 처리로 이름났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규정에 따라 똑 같이 죄를 따지고 벌을 주었다. 어느 때 이리는 사건 기록을 살피다 부하의 보고만 믿고 자신이 잘못 판결하여 무고한 사람을 처형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다.

이리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도록 했다. 문공은 이리에게 부하 관리가 잘못했다고 하여 상관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다면 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리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잘못 판결한 죄는 자신의 죄이며, 무고한 사람을 사형시킨 것은 자신도 사형입니다(失刑則刑 失死則死/ 실형즉형 실사즉사)’라 말하며 칼에 엎드려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잘못 판결했더라도 죽음으로 규정을 지킨 의지의 이리에게서 서약과 죽음(誓死)이 다르지 않다(不二)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서도 이에 못지않은 사람이 있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曉峰(효봉)스님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 법관을 하던 중 한 피고인에 사형을 내렸다가 심한 가책과 회의감을 느끼고 엿장수로 유랑 걸식하다 출가했다 한다. 독립된 법관이 정치의 눈치를 본다거나 상급 행정처의 협조 요청에 응한 판결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는 일이 있어 시끄러웠다. 재판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법관이 소신을 굳게 지키는 판결만 있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