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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조선 개국의 원동력, 성리학 2편

■ 조선 개국의 원동력, 성리학 2편

■ 조선 개국의 원동력, 성리학 2편

성리학이 고려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이 고려 말 추진된 개혁정치의 실천이념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리학의 어떤 측면이 개혁정치를 뒷받침해주는 요인이 되었을까? 성리학은 지배층의 수양(修養)과 수신(修身)을 강조하고 있다. 치자(治者)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닦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수기(修己)와 수양(修養)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여 하늘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려는 성리학의 우주론에 바탕하고 있다. 나아가 성리학은 지배층이 올바른 경륜으로 세상을 바로 잡고 백성을 구제해야 한다는 경세제민론(經世濟民論)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리학은 치자(治者)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학문이다.

원 간섭기 이래 여러 차례 단행된 개혁이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개혁의 주체인 국왕의 측근 세력의 부패이다. 치자(治者)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강조한 성리학 이념은 당시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실패를 거듭했던 그간의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매우 적합한 이념으로 생각된 것이었다. 고려에서도 주회가 집주한 4서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가 과거시험 과목으로 채택되면서 성리학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리학이 고려 말 개혁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었을까?

성리학적 개혁론은 두 가지 방향을 제시되었다. 하나는 지배층과 관료집단의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강조하였고, 그러한 자질을 갖춘 관료집단의 양성과 선발에 공정성을 학보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정방(무신정권기에 만들어진 인사행정기관)을 혁파하는 등 올바른 인재 선발을 목표로 삼았다. 다른 하나의 방향은 당시 백성들의 커다란 불만인 권세가의 불법적인 토지약탈을 바로 잡고 새로 충원된 관료집단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전제(田制)를 개혁하여 새로운 토지제도 즉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공민왕 때 성균관을 중영(中營)하였고, 이곳을 중심으로 이색. 정몽주등의 유학자들에 의한 성리학 연구가 본격화 되었으며, 성리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관료가 과거를 통해 대거 정계에 진출했다. 이들은 사대부(士大夫)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결집되었고, 정도전 · 조준 등의 사대부세력은 성리학 이념에 입각하여 이 두 가지의 이른바 택인재(擇人才), 복과전(復科田)의 개혁 방안을 바탕에 둔 개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388년(우왕 14년) 위화도 회군 이후 이들은 이성계 일파와 전제개혁을 비롯한 전면적인 개혁을 행하면서 고려왕조는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왕조 조선이 개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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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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