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서증暑症 1편
■성종의 서증(暑症) 1편
성종을 한평생 괴롭힌 질환은 더위 먹는 병인 ‘서증(暑症)’이었다. 서증(暑症)은 11세 무렵부터 시작돼 승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호소한 질병이었다. 최초의 관련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성종 14년 6월 11일에 나타난다. 『정해년에 심한 더위를 먹어 여름만 되면 이 증세가 발병한다.』 같은 해 6월 25일 기록엔 정희왕후의 제사를 임금이 지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도 있다. 성종 19년 6월 7일엔 의정부에서 더위 때문에 경연과 국정 활동을 중지했고, 25년엔 머리가 아프고 더위 먹은 증상이 있어서 경연을 취소했다고도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서증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 이후에 열병을 앓는 것은 서병(暑病)이다. 서(暑)란 상화(相火)가 작용하는 것이다. 여름에 더위를 먹으면 답답증이 생기고 말이 많아지며 몸에서 열이 나고 갈증이 나서 물을 들이키고, 머리가 아프며 땀이 나고 기운이 없어진다.』 여기서 상화란 신장(腎臟)에 소속된 명문(命門·생명의 문 또는 생명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오른쪽 콩팥을 이르는 한의학 용어)의 화를 가리킨다. 신장은 차가운 쪽신수(腎水)과 뜨거운 쪽명문(命門) 양면이 있다. 신장의 뜨거운 부분인 명문은 생명의 문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체의 보일러이다. 상화가 있어 더위를 잘 탄다는 점은 보일러가 지나치게 잘 달아오르는 걸 의미한다. 인간은 체온 36.5℃의 항온동물로, 보일러도 있지만 반대편엔 에어컨도 있어 체온을 유지해 준다. 하지만, 에어컨으로 진정하는 힘은 약하고 보일러로 달아오르는 힘이 더 큰 게 곧 상화다. 성종은 에어컨인 신수는 약하고 보일러인 상화, 즉 명문은 강한 열성 체질이었다. 그리고 상화를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분노(憤怒)이다.
세조의 장자(長子) 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이 갑자기 왕위에 오른다. 그가 제 9대 임금인 성종이다. 형인 월산군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당시 4세)이 있었는데도 대군 칭호도 받지 못한 채 자산군에서 자을산군으로 봉해진 성종이 왕위에 무난히 오른 배경에는 당시 최고 권력자 한명회의 존재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성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 장인인 한명회의 집에 거주할 때 서증이 시작되었다. 성종은 한명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당시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던 한명회의 집에 있는 동안 성종은 사실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상화가 발동할 만큼 분노할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닐까.
성종은 잘 흥분하고 예민했다. 까칠하고 직설적으로 반응하는 특징은 실록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 있다. 성종은 자주 수반(水飯)을 들었다. 물에 밥을 말아먹는 수반은 본질적으로 속이 타는 체질의 특성이 잘 드러난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단계심법》이란 책은 『여름철에 찬 음식을 많이 먹거나 찬물이나 얼음물을 너무 자주 마시면 토하거나 설사를 한다. 더위 먹은 데는 비위를 따뜻하게 하여 소화를 잘 시키고 습(濕)을 없애며, 오줌이 잘 나가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