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서증暑症 2편
■성종의 서증(暑症) 2편
수반을 자주 먹는 습관은 설사로 이어졌다. 성종 15년, 20년, 25년 여러 번 설사와 이질(痢疾)을 호소하는데, 특히 25년 8월 22일엔 사형수의 처형과 관련한 조계(朝啓:중신들이 편전에서 벼슬아치의 죄를 논하고 단죄하기를 임금에게 아뢰던 일)를 중단할 정도였다. 11월 20일엔 설사로 경연(經筵:어전에서 경서를 강론하던 일)을 정지하기도 하였다.
서증을 앓는 사람에 대한 지침을 동의보감은 이렇게 적고 있다. 『여름은 사람의 정신을 소모하는 시기다. 더위가 기(氣)를 상하게 하므로 지나치게 술을 마시거나 성생활을 하면 신(腎)이 상하여 죽을 수 있다. 심장의 기운 심화(心火)는 왕성하고 신장의 기운 신수(腎水)는 약해져 있으므로 성생활을 적게 하고 정기를 굳건하게 해야 한다.』
성종은 자타가 공인하는 ‘밤의 황제’였다. 오죽하면 ‘주요순(晝堯舜) 야걸주(夜桀紂)’ 란 별명이 붙었을까. 낮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였던 요순임금처럼 정사를 돌봤고, 밤엔 중국 하나라의 걸 임금과 은나라의 주 임금처럼 주색잡기에 능한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런 별칭에 걸맞게 유교국가로서의 정치기반을 확립하고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편찬 등의 큰 업적을 남긴 반면, 거의 매일 밤 곡연曲宴:임금이 궁중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 베풀던 소연(小宴)을 베풀어 기생들과 어울렸고, 많은 후궁을 거느렸다. 25년의 재위기간에 3명의 왕후와 9명의 후궁을 맞아들였고 16남 12녀를 두었다.
체질적으로 신장이 약한 성종이 과도한(?) 성생활로 명을 재촉하였지만, 술도 왕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었다. 공식적으로도 명이나 일본 사신들과 연회를 자주 벌였는데, 회례연(會禮宴:설날 등에 문무백관들과 베푸는 연회)이 18회, 양로연(養老宴)이 21차례, 진연(進宴: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베푸는 연회)이 50차례로 술 마실 기회가 너무 많았다. 서병(暑病)에 가장 해롭다고 경고한 음주와 성생활이 과도했던 것이다.
성종을 고통스럽게 한 또 하나의 질병은 치통이었다. 성종이 앓은 치통은 그의 약점인 신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치아는 뼈의 끝인데 이것은 신장이 주관한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신장이 쇠약하면 치아 사이가 벌어지고, 허열(虛熱)이 있으면 이가 흔들린다. 정기가 왕성하면 이가 든든하다.』며 신장의 허열이 병의 뿌리임을 강조했다.
성종은 재위기간 25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였다. 재위 24년 말부터 그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죽기 한 달 전부터 성종은 숨이 가쁘고 기침이 나는 천증(喘症)을 호소했고,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 배꼽 밑에 작은 덩어리가 생겨 조금씩 아프고 빛깔도 조금 붉다고 하였다. 12월 12일엔 다리가 여위고 연약해 마비된 것을 힘들어하다가 허리 밑 종기와 갈증으로 결국 운명하고 말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