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의 여인들 폐비윤씨 1편
■ 성종의 여인들 폐비윤씨 1편
성종의 계비(繼妃)가 된 윤씨(尹氏)는 판봉상시사 윤기견과 부부인 신씨의 딸이며, 신숙주의 외조카였다. 아버지 윤기견은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세종실록》과 《고려사절요》 편찬에도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윤기견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자, 어린 윤씨가 길쌈을 해서 어머니 신씨를 봉양했다고 한다. 윤씨는 성종보다 2살 연상으로 어릴 때 간택 후궁으로 1473년(성종 4년) 입궐하여, 종2품 숙의에 봉해졌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따르면 윤씨는 입궐 후 검소하고 온화한 태도로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왕실에는 세 명의 대비(大妃) 즉 정희왕후(貞熹王后)·안순왕후(安順王后)·소혜왕후(昭惠王后)가 있었는데, 윤씨는 이들 또한 극진하게 봉양하여 신뢰를 얻었다. 3년 뒤인 1476년(성종7년) 첫 부인인 공혜왕후가 18세의 나이에 요절하자, 숙의 윤씨를 왕비로 간택했다. 윤씨는 왕비로 간택되었을 때 임신 중이었으므로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성종母) 한씨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 7일 윤씨는 원자(元子) 이융(후에 연산군)을 낳으면서 왕비로서의 지위가 확고부동해지는 듯 했지만, 여색(女色)을 탐하는 성(性)종이 그녀에만 만족할 리가 없었다. 중전 윤씨가 아들을 낳고 몸을 추스르며 육아에 집중하는 동안, 성종은 아름다운 소용 정씨와 엄씨의 처소를 들락거리며 후궁들을 총애하면서 산후우울증(?)과 함께 윤씨의 투기가 점점 심해져 성종과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윤씨의 집안이 크게 내세울 만한 명문가가 아니다 보니 집안이 좋은 후궁들은 은근히 왕비를 무시하며 그 자리를 위협했다. 본성이 괄괄한 성격이었던 윤씨는 그런 왕과 후궁들의 태도를 참지 못하고 성종과 종종 다투었다. 두 후궁은 성종의 총애를 받게 되자, 자신들도 윤씨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꿈을 꾸면서 윤씨를 총애하고 있던 인수대비에게 접근하여 윤씨를 고자질했다. 인수대비는 원자를 낳은 윤씨를 이뻐했었지만, 두 사람의 이간질로 점차 윤씨를 탐탁치않게 여기게 되었다.
윤씨는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으로서 내명부를 다스렸지만, 돌아서버린 남편의 사랑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심하던 그녀는 자신의 연적(戀敵)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어머니 신씨의 도움을 받아 정씨와 엄씨의 처소에 시신의 뼈를 묻어두어 죽게 만드는 매흉(埋兇:주술의 일종)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매흉이 아무런 효과가 없자, 후궁 정씨와 엄씨가 짜고 자신과 원자를 죽이려 한다는 투서를 만들어 숙의 권씨의 처소에 던져 넣어 일부러 공개되게 만들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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