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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목요일

세종시대의 그늘 1편

■ 세종시대의 그늘 1편

■ 세종시대의 그늘 1편

세종대왕은 1418년 22살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32년 동안 한글창제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정 전반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백성을 두루 살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룬 성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세종대왕은 충분히 그럴만한 업적과 인품을 갖추고 있지만, 그도 인간이었으므로 흠결도 있었을 터이다.

세종 시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태평성대였던 것은 확실하지만, 나름 고충도 많았다. 남으로는 왜구의 침탈과 북방에서는 여진의 침입도 있었다. 가뭄, 홍수 등의 기상재해와 기근도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세종 즉위 후 4년간 세종은 이름만 왕이었지 세자나 다름없었다. 모든 일은 당시 상왕(上王)인 태종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병권을 장악한 채 세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었다. 세종 원년에 있었던 대마도 정벌도 100% 태종에 의해서 기획, 실행되었다. 세종은 태종에 의해서 장인 심온이 대역죄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장모는 노비로 전락하는 등 처가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도 왕으로서 아무런 손도 쓰지 못했다.

심지어는 장인 심온이 심한 고문 끝에 죄를 자백하고 죽임을 당하기 직전 바로 전날에도 태종과 함께 술자리 연회를 베풀고 신하들과 함께 춤을 추고 즐겼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이 실록의 기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성군 세종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세종은 태종이 상왕으로 있었던 4년간은 완전 허울만 왕으로서 파파보이에 불과했다.

세종이 왕으로 즉위할 때의 나이가 22살이면 충분히 스스로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세종은 그러하지 못했다. 신하들이 세종에게 주청(奏請)드리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상왕에게 여쭙고 나서 결정하겠다’ 는 세종의 말이 실록에 기록된 것만 해도 4년 동안 60번이 넘는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세종대왕의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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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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