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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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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을 소(小/0) 때 시(日/6) 마칠 료(亅/1) 마칠 료(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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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天才(천재)나 어릴 때부터 재주와 슬기가 특출한 神童(신동)을 모두들 부러워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해 온 것은 이러한 학문의 천재, 예술의 신동에 의해 힘입은 바가 크니 당연하다. 그런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비아냥거리는 말도 제법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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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일 년 만은 누구나 천재’, ‘열 살에 신동, 열다섯에 재사, 스물이 넘으면 그저 평범한 사람’ 같은 말이 그것이다. 어릴 때부터(小時) 매우 똑똑하다(了了)는 성어도 칭찬에서 부정적으로 기운 말 중의 하나다. 마칠 了(료)는 ‘밝다, 똑똑하다’의 뜻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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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後漢(후한) 말기 孔子(공자)의 20세손인 孔融(공융, 153~208)은 뛰어난 학자로 문필에도 능하여 建安七子(건안칠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응대하는 말에 기지가 번득였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洛陽(낙양)에 갔을 때 명망 높은 태수 李元禮(이원례)를 방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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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태수를 찾아가 꼬마가 친척이라 말하고 당당히 만났다. 이원례가 어떤 친척관계인지 물었더니 태수의 선조인 伯陽(백양)과 자신의 선조 仲尼(중니)가 사제관계이니 대대로 교분이 있는 사이라 답했다. 공자(자가 중니)가 젊었을 때 老子(노자, 자가 백양)에 배운 적이 있는 것을 말하자 모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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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송)나라의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전하는 다음 이야기가 더 기지에 넘친다. 공융을 모두 칭찬하는 중에 한 사람이 ‘어려서 똑똑하다고 커서도 반드시 훌륭하게 되지는 않지요(小時了了 大未必佳/ 소시료료 대미필가)’라 했다. 여기에 대뜸 답한다. ‘제 생각에 선생께선 어렸을 때 분명 똑똑했을 것 같습니다(想君小時 必當了了/ 상군소시 필당료료).’ 공융이 자기를 깎아내리는 사람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공융은 후일 탄탄대로를 걷다가 曹操(조조)의 야심을 간파하고 공개적으로 견제한 것에 미움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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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재주가 커서도 이어지지 않는 것은 공융의 자녀에게도 이어진다. 공융이 조조군에 잡혀가던 날 9세와 7세 된 자녀는 새 둥지가 뒤집히면 알이 깨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태연히 바둑을 뒀다고 한다. 巢毁卵破(소훼난파)가 여기서 나왔다. 똑똑하던 신동이 나중까지 크게 되지 않는다고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서도 종종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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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 210으로 현존 최고의 천재, 대학생보다 수학문제를 더 잘 풀던 꼬마신동이 후일 존재가 없다고 실망한다. 더 자라날 여건이 안됐을 수도 있고, 너무 큰 기대로 중압감을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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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을 소(小/0) 때 시(日/6) 마칠 료(亅/1) 마칠 료(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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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天才(천재)나 어릴 때부터 재주와 슬기가 특출한 神童(신동)을 모두들 부러워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해 온 것은 이러한 학문의 천재, 예술의 신동에 의해 힘입은 바가 크니 당연하다. 그런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비아냥거리는 말도 제법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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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일 년 만은 누구나 천재’, ‘열 살에 신동, 열다섯에 재사, 스물이 넘으면 그저 평범한 사람’ 같은 말이 그것이다. 어릴 때부터(小時) 매우 똑똑하다(了了)는 성어도 칭찬에서 부정적으로 기운 말 중의 하나다. 마칠 了(료)는 ‘밝다, 똑똑하다’의 뜻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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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後漢(후한) 말기 孔子(공자)의 20세손인 孔融(공융, 153~208)은 뛰어난 학자로 문필에도 능하여 建安七子(건안칠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응대하는 말에 기지가 번득였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洛陽(낙양)에 갔을 때 명망 높은 태수 李元禮(이원례)를 방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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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태수를 찾아가 꼬마가 친척이라 말하고 당당히 만났다. 이원례가 어떤 친척관계인지 물었더니 태수의 선조인 伯陽(백양)과 자신의 선조 仲尼(중니)가 사제관계이니 대대로 교분이 있는 사이라 답했다. 공자(자가 중니)가 젊었을 때 老子(노자, 자가 백양)에 배운 적이 있는 것을 말하자 모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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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송)나라의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전하는 다음 이야기가 더 기지에 넘친다. 공융을 모두 칭찬하는 중에 한 사람이 ‘어려서 똑똑하다고 커서도 반드시 훌륭하게 되지는 않지요(小時了了 大未必佳/ 소시료료 대미필가)’라 했다. 여기에 대뜸 답한다. ‘제 생각에 선생께선 어렸을 때 분명 똑똑했을 것 같습니다(想君小時 必當了了/ 상군소시 필당료료).’ 공융이 자기를 깎아내리는 사람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공융은 후일 탄탄대로를 걷다가 曹操(조조)의 야심을 간파하고 공개적으로 견제한 것에 미움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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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재주가 커서도 이어지지 않는 것은 공융의 자녀에게도 이어진다. 공융이 조조군에 잡혀가던 날 9세와 7세 된 자녀는 새 둥지가 뒤집히면 알이 깨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태연히 바둑을 뒀다고 한다. 巢毁卵破(소훼난파)가 여기서 나왔다. 똑똑하던 신동이 나중까지 크게 되지 않는다고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서도 종종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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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 210으로 현존 최고의 천재, 대학생보다 수학문제를 더 잘 풀던 꼬마신동이 후일 존재가 없다고 실망한다. 더 자라날 여건이 안됐을 수도 있고, 너무 큰 기대로 중압감을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