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양지인宋襄之仁 – 송나라 양공의 인자함, 쓸데없이 하찮은 인정을 베풂
송양지인(宋襄之仁) – 송나라 양공의 인자함, 쓸데없이 하찮은 인정을 베풂
성 송(宀/4) 도울 양(衣/11) 갈 지(丿/3) 어질 인(亻/2)
남을 생각하고 양보하거나 먼저 배려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행하기 어려운 미덕이다. 성인들이 양보를 찬양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성공의 가장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격언도 있다. 하지만 아무 때나 양보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죽고 살기로 싸우는 전쟁 통에는 남에게 이겨야 한다. 병사를 전쟁에 출전시켰을 땐 계책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속임수를 쓰는 것도 부끄러워하거나 싫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兵不厭詐(병불염사)란 말이 잘 말해준다. 그런데 싸움터에 나가서도 쓸데없이 대의명분만 따지다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있다. 宋(송)나라 襄公(양공)의 인자함이라는 뜻의 성어를 남긴 양공이다. 불필요한 동정이나 배려를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유하는 말이다.
송나라는 唐(당)을 멸망시킨 송이 아니고 春秋時代(춘추시대)의 소국이었다. 그래도 殷(은)나라를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양공은 태자 때 이복형인 目夷(목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했으나 부왕이 죽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 7년째 되던 해 송나라에 강풍을 동반한 심한 비와 함께 운석이 계속해서 퍼부어졌고 얼마 안 있어 첫 霸者(패자)였던 齊(제)의 桓公(환공)이 죽었다. 양공은 이제 자신이 패자가 될 징조라며 야망을 품었다. 초기엔 제법 제나라를 치고 추종세력을 만들었고 盂(우)라는 곳에서 회맹하여 맹주로 자처하기도 했다. 재상으로 있던 형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그즈음 이웃 鄭(정)나라가 자기를 무시하고 楚(초)나라와 통교했다는 이유로 쳐들어갔다.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초나라의 대군이 泓水(홍수)라는 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목이가 적이 강을 건너기 전에 쳐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듣지 않았고, 건너와 진을 칠 때 공격해야 한다고 해도 물리쳤다. ‘군자는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오(君子不困人於厄/ 군자불곤인어액).’ 전열을 가다듬은 초군이 공격해 오자 송군은 대패했고 양공은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어 그것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송나라 양공의 인이라며 비웃었다(世笑以爲宋襄之仁/ 세소이위송양지인). ‘史記(사기)’ 송세가, ‘十八史略(십팔사략)’, ‘左氏傳(좌씨전)’ 등 여러 곳에서 실려 전한다.
양보를 할 때도 그에 못지않은 이득을 차려야 성공한 협상이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 못하고 상대방의 힘에 눌려 자꾸 뒷걸음질을 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작은 규모의 상담이나 국가 간의 외교전도 마찬가지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