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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9일 화요일

슬견외경蝨犬畏敬 - 이나 개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다.

슬견외경蝨犬畏敬 - 이나 개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다.

슬견외경(蝨犬畏敬) - 이나 개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다.

이 슬(虫/9) 개 견(犬/0) 두려워할 외(田/4) 공경 경(攵/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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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막일을 하는 사람이나 생명은 하나뿐이니 가치는 똑 같다. 심지어 조그만 해충 이(蝨)나 주변에 흔히 기르는 개(犬)의 목숨도 똑 같이 소중히 여긴다(畏敬)는 것이 이 말이다. 이 소중한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자살하는 사람들이다. 성서에서도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복음)고 했지만 자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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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고려시대 문호 李奎報(이규보)의 ‘東國李相國集(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수필 ‘虱犬說(슬견설, 虱은 蝨과 같은 이 슬)’에 나온다. 고전번역원의 한역을 토대로 간단히 추려보면 이렇다. 한 사람이 찾아와 길거리서 개를 잡는 모습을 보았다며 그 모습이 참혹하여 앞으로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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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居士(백운거사, 이규보 아호)가 답하길 화로를 끼고 이를 잡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자기는 다시 이를 잡지 않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미물과 큰 동물을 동일시하여 말하니 놀리는 것이라고 화를 냈다. 그래서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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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곤충 개미에 이르기까지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은 동일한 것이네(凡有血氣者 自黔首至于牛馬猪羊昆蟲螻蟻 其貪生惡死之心/ 범유혈기자 자검수지우우마저양곤충루의 기탐생오사지심).’ 그러면서 물러나서 달팽이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큰 붕새처럼 같이 보게 되면(視蝸角如牛角 齊斥鷃爲大鵬/ 시와각여우각 제척안위대붕) 도를 논의하자고 말했다. 鷃은 메추라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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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크기나 겉모습, 인간에 대한 이로움과 해로움과는 상관없이 모두 근원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인식한 사상은 菜根譚(채근담)의 ‘쥐를 위해 항상 밥을 남겨두고, 나방을 위해 등불을 켜지 않는다(爲鼠常留飯 憐蛾不點燈/ 위서상류반 연아부점등)고 한 말과 통한다. 또 박애주의 성인 슈바이처가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가 날개가 타서 책상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 보다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했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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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1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노인의 자살이 높은 것은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여 시스템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말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도 있다. 죽고 난 뒤엔 아무 것도 바랄 수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