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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6일 토요일

시과비중是寡非衆 -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은 많다, 세상사 자기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시과비중是寡非衆 -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은 많다, 세상사 자기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시과비중(是寡非衆) -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은 많다, 세상사 자기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옳을 시(日/5) 적을 과(宀/11) 아닐 비(非/0) 무리 중(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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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옳고 바른 일만 행해진다면 시끄러울 일이 없다. 하지만 세상에 사리에 맞고 바른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따질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있다. ‘참새가 기니 짧으니 한다’는 속담은 비슷비슷한 가운데 굳이 크고 작음이나 잘잘못을 가리려 할 때 쓰는 말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알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는 熟是熟非(숙시숙비)이고 바로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라는 誰知烏之雌雄(수지오지자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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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明末(명말)의 洪自誠(홍자성)이 쓴 교훈집 ‘菜根譚(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꾀꼬리 울음을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한다. 꽃을 보면 가꾸려 하고, 풀을 보면 뽑으려 한다(聽鶯啼則喜 聞蛙鳴則厭 見花則思培之 遇草則欲去之(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듣기 좋고 시끄럽다거나 아름답고 보기 싫다는 것은 사람들이 기호에 따라 구분한 것이지, 천지자연의 본성으로 본다면 좋고 싫거나 옳고 그른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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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대학자 眉叟(미수) 許穆(허목, 1595~1682)이 남긴 ‘於是齋記(어시재기)’에는 여기에 관한 명쾌한 말이 나온다. 潭陽(담양)의 관리 任侯(임후)가 어시재란 작은 집을 짓고 기문과 편액을 청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옳은 것은 적고, 그른 것은 많습니다(於是者寡 於非者蓋衆/ 어시자과 어비자개중)’란 글을 보낸다. 허목은 좋은 글이라 하고 명을 짓는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명철한 사람이면 가려낼 수 있다네(有是非 明者擇之/ 유시비 명자택지), 옳은 데 처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확고하게 지키기가 어려운 법이라네(處是非難 確於是爲難/ 처시비난 확어시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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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 이런데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사에는 자기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자기 생각이 항상 바르다고 본다. 그렇지만 옳은 방향으로 일을 했는데 결과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물론 나쁜 방향인 줄 알면서도 밀고 나간 것은 아닐지라도 나중에 자세히 따져보면 옳은 것보다 그른 것이 많을 수 있다. 정책 하나하나가 국민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므로 입안 시행하는 당국자는 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