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3편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3편
한편, 낭도(郞徒)들의 신분이나 자격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수도인 경주에 사는 6부민(六部民)출신의 자제들이 주축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전에는 이들을 진골귀족 이하 6두품·5두품·4두품에 이르는 상류계층 출신의 청소년만으로 좁혀서 생각하였으나, 그들 가운데 일반 병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만큼 3두품 이하 2두품·1두품에 이르는 평민들의 자제들도 낭도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옳은 것 같다.
화랑도는 이처럼 진골귀족에서부터 일반평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분에 속하는, 수도 경주 거주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맺어지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화랑도는 골품제도와 같이 혈연주의에 입각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혈연주의를 초월해 자신들의 의사에 의해 결성된 일종의 결사체라 할 수 있다. 화랑도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단체생활을 했다. 신라에서는 통상 3년을 하나의 서약·수련·의무 기간으로 정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화랑인 김유신(金庾信)의 수련기간이 3년으로 나타나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화랑에 대한 기록을 종합해보면, 화랑은 대개 15세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으로 되어 있다. 화랑집단의 구성원들은 이 기간 동안 경주 부근의 남산을 비롯해 금강산·지리산 또는 최근에 알려진 경상남도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 계곡과 같은 명승지를 찾아다니면서 자긍심을 기르는 한편 무예와 도의(道義)를 연마하였다. 특히, 화랑은 김유신의 경우에서 보듯 혼자서 깊은 산 속의 동굴을 찾아가 단식기도하면서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화랑도가 연마한 도의는 유·불·선 3교의 정신을 받들고 오계(五戒)와 3덕(三德)을 신조로 하며, 애국애족을 표방하였다. 5계란 임금에게 충성하고(事君以忠:사군이충), 부모에게 효도하며(事親以孝:사친이효), 친구에게는 신의를 가지고(交友以信:교우이신), 싸움터에서는 후퇴할 줄 모르며(臨戰無退이전무퇴), 살생은 가려서 한다는 것(殺生有擇:살생유택)이고, 3덕이란 겸허, 검소, 순후(淳厚)를 뜻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귀중하게 여기던 덕목은 충(忠)과 신(信)이었다. 이것은 화랑도가 제정된 6세기 중엽으로부터 삼국통일을 이루는 7세기 중엽까지의 1세기 동안이 신라 역사상 드물게 보는 국난(國難)기였기 때문이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