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전 독일의 정치가이자 나치의 총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인물이다. 독일 민족에 의한 유럽 제패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전하였고,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함락 직전에 권총 자살하였다.
오스트리아의 독일 국경부근에 있는 브라우나우에서 출생했으며,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05년 실업학교를 퇴학하고 미술대학에 진학하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1907년 18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물려받은 유산과 그림엽서 등을 팔면서 생활하였는데, 당시 오페라와 바그너에 심취하였고 매일 도서관을 다니며 독학으로 지식을 습득하였다. 히틀러는 독신자합숙소의 공영시설(公營施設)에서 생활하면서 젊은 시절이 가난하고 불우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일대기를 과장하기 위해 꾸민 것이다.
○ 반유대주의 형성과 정당 가입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내던 시기 인종이론이나 반유대주의를 익히게 되는데,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자랐던 오스트리아의 기독교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히틀러는 란츠 폰 리벤펠스의 정치 평론이나 정치가 카를 뤼거·게오르히 리터 폰 쇠너러 등의 영향을 받아, 이후 그의 정치관념의 바탕이 되는 아리아 인종 우월주의를 배웠다. 그리고 이는 추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독일민족지상주의자가 된 그는 1913년 오스트리아의 병역을 기피하여 독일 뮌헨으로 피신했으나 1914년 당국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신체검사에서 부적격으로 판정되어 병역이 면제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바이에른 16보병연대 입대를 자원했으며, 여기에서 무공을 세워 1급 철십자장(鐵十字章)을 받았다. 1919년 9월 독일노동자당이라는 반(反)유대주의적인 군소 정당에 가입하였는데 이는 나치스(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전신이다. 그는 탁월한 웅변능력을 통한 선전활동으로 당세를 확장해 나갔으며,1920년 4월 군대에서 제대하여 당의 선동가로서 정치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 독일노동당 당수가 되다
히틀러는 당명을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으로 변경하고, 1921년 7월 29일 마침내 당내(黨內)의 독재적 지위를 가진 당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군부와 보수파 등과 손을 잡고 ▷민족주의 강조 ▷베르사유 조약 타파 ▷민주정당 타도와 독재 강행 ▷유대인 배척 등을 강조하였으며 대중 집회를 통하여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이후 파시스트당의 로마 진군에 자극받아 1923년 뮌헨에서 봉기하나 실패했으며, 이에 란츠베르크 육군형무소에 투옥되었다. 당시 옥중에서 출판한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그는 동유럽을 정복,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확장시킨다는 내용을 담았다. 출옥 후에는 와해된 당의 조직을 재편하고 합법적 방식의 민주공화제 전복을 도모한다.
○ 일당 독재체제의 확립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독일 경제는 실직자 수가 600만 명으로 늘어나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나 민주 정당들은 이러한 타격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그 결과 1930년 9월 총선거에서 나치스는 18.3%의 득표율로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에 등극하였다. 당시 히틀러는 연립내각에 입각하기를 거절하고 나치스의 독재지배를 요구하였는데, 1932년 4월 대통령선거에서 P. 힌덴부르크에게 패하였다. 그러나 7월 총선거에서는 37.3%를 득표하면서 압도적인 당세를 과시하였고, 이때도 연립내각에 참가할 것을 거부하였다. 이후 11월 총선거에서는 다소 지지율이 떨어졌으나, 자본가들을 비롯한 많은 지배세력들이 히틀러를 지지하게 되었다. 대통령이었던 힌덴부르크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였고, 히틀러는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반대파를 탄압하고 1933년 7월 일당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1934년 8월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여, 그 지위를 총통 및 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 약칭 총통)이라 칭하였다. 이후 전권위임법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이 종말을 맞이하면서 제3제국이 시작되었고, 지방 의회가 해산되었으며 사민당은 불법화되었다. 또한 각종 단체와 조합들은 나치당의 하부조직으로 바뀌었다. 그는 민주공화제 시대에 비축된 국력을 이용, 확장하여 국가의 발전을 꾀하였다. 독일 국방군은 나치 당원에 융합되었고, 히틀러는 이러한 권력 인수와 더불어 각계 요인들의 협력 아래 외교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경제의 재건과 번영을 이루는 등 독일을 유럽 최강국으로 발돋움시키면서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 2차 대전 패배와 죽음
"히틀러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에 가득 차 있었고 전 세계의 수도에 해당되는 게르마니아라는 도시를 계획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 민족에 의한 유럽 제패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나치군은 공습 및 기계화 부대의 신속한 기동력이 결합한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법으로 초기에는 대승을 여러 번 거두었으나, 스탈린그라드의 패전 전후부터 현실을 무시한 지령을 남발하여 패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다 1944년 7월 20일 과거에 그를 돕던 장군들과 보수제정파의 정치가들이 일으킨 반란을 제압하기도 했으나, 나치스의 퇴세는 이미 만회할 길이 없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29일 베를린의 지하호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날 베를린 함락 직전에 권총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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