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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일요일

양타삼척讓他三尺 - 석 자의 땅을 양보하다, 양보의 미덕

양타삼척讓他三尺 - 석 자의 땅을 양보하다, 양보의 미덕

양타삼척(讓他三尺) - 석 자의 땅을 양보하다, 양보의 미덕

사양할 양(言/17) 다를 타(亻/3) 석 삼(一/2) 자 척(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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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나 자리, 물건 등을 남에게 讓步(양보)하는 모범적인 시민은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까지 양보하는 사람은 확 줄어든다. 지독하게 남에게 인색하다는 ‘감기 고뿔도 남을 안 준다’는 속담이 와 닿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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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를 감수하며 양보를 하는 사람이 많을 수가 없다. 이런 사람에게 링컨(Lincoln)은 명언을 남겼다. ‘시비를 가리느라고 개에게 물리느니보다 차라리 길을 양보하는 것이 낫다. 개를 죽여 봤자 물린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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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이 석자 되는 땅(三尺)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讓他)는 이 성어는 이웃과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땅을 뒤로 물린 고사에서 나왔다. 손해를 감수한 양보의 미덕을 나타낼 때 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淸(청)나라 康熙帝(강희제)때 재상을 지낸 張英(장영, 1637~1708)이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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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 樂圃(낙포)인 그는 고위직에 있으면서 공정한 일처리로 덕망이 높았고, 아들 張廷玉(장정옥, 1672~1755)도 뒤따라 老少二宰相(노소이재상)이란 명성을 얻었다. 또 6대에 13명의 진사가 배출됐다고 할 정도다. ‘桐城縣誌(동성현지)’에 실려 있다는 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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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이 높은 자리에 있을 때 安徽省(안휘성) 桐城(동성)에 있는 그의 고향집에서 편지가 왔다. 좁은 공간을 사이에 둔 이웃집에서 담을 쌓으면서 밖으로 몇 자 나왔는데 막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장영이 답장을 보냈다. ‘단지 담장 때문에 천 리 밖으로 편지를 쓰다니, 석 자쯤 양보해도 탈이 없잖을까(千里修書只爲墻 讓他三尺有何妨/ 천리수서지위장 양타삼척유하방).’ 그러면서 만리장성은 남아 있지만 쌓은 秦始皇(진시황)은 볼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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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은 고향 사람들은 자기 땅으로 석 자 들여 담을 쌓았고, 그것을 본 이웃집도 새 담을 허물고 석 자 뒤로 물려 폭이 여섯 자 되는 새 길이 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여섯 자 골목이라고 六尺巷(육척항)이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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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고, 지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선현들이 좋은 말을 남겼어도 먼저 양보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금씩 손해보고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곳은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않는다. 특히 여야가 대치하는 국회가 여섯 자 골목의 미담을 실천하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8일 금요일

양타삼척讓他三尺 - 석 자의 땅을 양보하다, 양보의 미덕

양타삼척讓他三尺 - 석 자의 땅을 양보하다, 양보의 미덕

양타삼척(讓他三尺) - 석 자의 땅을 양보하다, 양보의 미덕

사양할 양(言/17) 다를 타(亻/3) 석 삼(一/2) 자 척(尸/1)

길이나 자리, 물건 등을 남에게 讓步(양보)하는 모범적인 시민은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까지 양보하는 사람은 확 줄어든다. 지독하게 남에게 인색하다는 ‘감기 고뿔도 남을 안 준다’는 속담이 와 닿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손해를 감수하며 양보를 하는 사람이 많을 수가 없다. 이런 사람에게 링컨(Lincoln)은 명언을 남겼다. ‘시비를 가리느라고 개에게 물리느니보다 차라리 길을 양보하는 것이 낫다. 개를 죽여 봤자 물린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법이다.’

폭이 석자 되는 땅(三尺)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讓他)는 이 성어는 이웃과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땅을 뒤로 물린 고사에서 나왔다. 손해를 감수한 양보의 미덕을 나타낼 때 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淸(청)나라 康熙帝(강희제)때 재상을 지낸 張英(장영, 1637~1708)이란 사람이다. 호가 樂圃(낙포)인 그는 고위직에 있으면서 공정한 일처리로 덕망이 높았고, 아들 張廷玉(장정옥, 1672~1755)도 뒤따라 老少二宰相(노소이재상)이란 명성을 얻었다. 또 6대에 13명의 진사가 배출됐다고 할 정도다. ‘桐城縣誌(동성현지)’에 실려 있다는 내용을 보자.

장영이 높은 자리에 있을 때 安徽省(안휘성) 桐城(동성)에 있는 그의 고향집에서 편지가 왔다. 좁은 공간을 사이에 둔 이웃집에서 담을 쌓으면서 밖으로 몇 자 나왔는데 막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장영이 답장을 보냈다. ‘단지 담장 때문에 천 리 밖으로 편지를 쓰다니, 석 자쯤 양보해도 탈이 없잖을까(千里修書只爲墻 讓他三尺有何妨/ 천리수서지위장 양타삼척유하방).’ 그러면서 만리장성은 남아 있지만 쌓은 秦始皇(진시황)은 볼 수가 없다고 했다. 편지를 읽은 고향 사람들은 자기 땅으로 석 자 들여 담을 쌓았고, 그것을 본 이웃집도 새 담을 허물고 석 자 뒤로 물려 폭이 여섯 자 되는 새 길이 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여섯 자 골목이라고 六尺巷(육척항)이라 이름 붙였다.

싸우지 않고 이기고, 지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선현들이 좋은 말을 남겼어도 먼저 양보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금씩 손해보고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곳은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않는다. 특히 여야가 대치하는 국회가 여섯 자 골목의 미담을 실천하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