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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목요일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2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2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2편

사방지의 어머니는 이런 자식의 본색을 숨기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얼굴에 연지와 분을 발라주고 여자 옷을 입혔으며, 바느질을 가르치는 등 완벽한 여자로 키웠다. 사방지는 얼굴이 매우 예뻤으므로 주변 사람들은 그가 음양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사방지는 그 덕(?)에 남자들의 출입이 제한된 사대부가의 규방(閨房)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홀몸이 된 과부들을 유혹해 무수히 통정(通情)했지만, 겉모습이 완전한 여자였으므로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았다. 여성들의 바깥나들이가 제한되고 연애는 물론 개가(改嫁)까지도 죄악시되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그의 존재는 사대부가의 여인들에게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은밀한 향락을 누리던 사방지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상전(上典)이 혼기가 찼다는 이유로 남자 노비와 짝을 맺어주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신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궁리 끝에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상전의 허락을 얻어 동대문 밖에 있는 절에 들어가 비구니 행세를 하며 지냈다. 한데 여색에 심취해버린 그는 절에서도 본성을 숨기지 못하고 함께 기거하던 비구니 중비와 지원, 소녀 등과 통정하기에 이른다. 양반가(兩班家)의 마님이 보낸 미모의 여인이었으므로 비구니들은 사방지를 처음부터 경계하지 않았고, 그가 양성임을 안 뒤부터는 서로 앞을 다투어 사방지와 관계를 갖기를 원했다.

그 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중비는 사방지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평소 드나들던 선비 김구석의 미망인 이씨에게 그를 소개했다. 이씨는 사방지의 정체를 알고서도 오히려 반색하며 집안의 침모(針母)로 받아들였다. 당시 그녀는 두 자녀를 출가시킨 뒤였지만 여자임을 포기할 만큼 늙지 않았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남녀의 정분을 나누면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발전했다.

사방지를 사랑했던 이씨는 세종대에 장영실, 이천과 함께 명성을 날린 과학자 이순지의 딸이었다. 한양의 위도를 알아내면서 세종의 신임을 받아 천문역법의 전문가로 성장한 이순지는 1442년 조선 최초의 역법(曆法)인 ‘칠정산외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서 중국으로부터 조선의 시간을 독립시킨 이순지의 존재감은 여느 중신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의 아들 김유악은 계유정난과 왕위 찬탈을 적극 지지했던 세조의 충신인 대학자 정인지의 사위였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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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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