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서혼鼹鼠婚 – 두더지의 혼사,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함
언서혼(鼹鼠婚) – 두더지의 혼사,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함
두더지 언(鼠/9) 쥐 서(鼠/0) 혼인할 혼(女/8)
땅 속에 굴을 파서 생활하는 두더지를 나타내는 한자는 鼹(언)외에 鰋(언), 蝘(언) 등 모두 어렵다. 田鼠(전서)나 野鼠(야서)라고도 표현한다. 두더지의 혼인 이란 뜻의 이 말은 아 난에 소개한 적이 있는 野鼠之婚(야서지혼)과 똑 같은 말이다. 두더지가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하다가 결국에는 같은 족속에게로 돌아간다. 짚신이 유리 구두와 짝이 될 수 없듯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엉뚱한 희망을 갖는 것을 꼬집었다.
의인화된 동물이 주요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설화가 動物譚(동물담)이다. 우리나라에선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경쟁하는 三國遺事(삼국유사)의 檀君神話(단군신화)부터 기원한다고 했다. 그리스의 이솝(Aesop) 우화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 이야기가 조선 인조 때 洪萬宗(홍만종)의 문학 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도 같이 실려 있는 것이 박쥐의 오락가락과 두더지 혼사다. 짐승과 새 사이에서 자기 이익만을 위해 박쥐가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줏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蝙蝠之役(편복지역, 蝙은 박쥐 편, 蝠은 박쥐 복)이란 말로 실려 있다.
두더지 한 마리가 새끼를 칠 때가 되어 짝을 구하러 나섰다. 가장 높은 데 살고 있는 하늘에게 먼저 청혼을 했다. 그러자 하늘은 자신이 온 세상을 총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 없다고 했다. 그길로 해와 달에게 혼인해 줄 것을 청하니 자기를 가리는 구름보다 못하다고 했다.
이번에는 구름이 바람 한 번 불면 흩어진다고 반대하고, 다시 바람에게 가서 혼인을 청하니 밭 가운데 있는 돌부처는 넘어뜨릴 수가 없다며 또 거절당했다. 돌부처에 찾아가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록 거센 바람도 무섭지 않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밑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넘어지고 말지(我雖不畏風 惟野鼠 穿我足底 則傾倒/ 아수불외풍 유야서 천아족저 즉경도).‘
부지런히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가 청혼해도 결국은 두더지가 가장 좋은 배필이라는 소리를 듣고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높다고 기고만장했다. 재산이나 지위가 턱없이 차이나는 집안과 결혼을 했다고 처음에 으스대다가 나중에는 불행으로 결말이 나는 것을 종종 본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란 격언이 실감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