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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2일 금요일

역병疫病을 물리치는 처용 2편

■ 역병疫病을 물리치는 처용 2편

■ 역병(疫病)을 물리치는 처용 2편

그때 용의 아들 중 한 명이 왕을 따라왔는데, 그가 바로 처용(處容)이다. 왕을 따라 신라의 서울인 경주에 온 처용이 나라 일을 정성껏 도와주자 왕은 그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짝지어 주고 벼슬도 내려 주었다. 어느 날, 처용이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방 안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이 사람 모습으로 변해 자기 아내와 함께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처용은 화를 내거나 소리치지 않고 태연하게 마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처용가(處容歌)’이다.

서울(경주) 밝은 달 아래 밤 깊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마는 뺏어간들 어찌하리.

그 노래를 들은 역신이 놀라 제 모습을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빌며 도망쳤다. 그 뒤로 ‘처용’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신라 사람들은 역신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문에 붙였고, 궁궐에서는 새해를 맞이할 때 처용 탈을 쓰고 처용이 추었다는 춤을 따라 추며 한 해 동안 역신이나 악귀가 들지 않도록 빌었다고 한다. 이를 처용무(處容舞)라고 부르는데, 처용무는 고려와 조선 시대로 이어지면서 궁궐의 한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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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에서는 처용이 용의 아들로 등장하지만, 학자들은 실제로는 용의 아들이 아니라 그 당시 신라에 들어와 있던 아라비아 상인, 즉 중동 지역 출신의 인물이 아닌가하고 추측하고 있다. 처용이 아랍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처용 탈의 생김새로 볼 때 얼굴색이 팥죽색처럼 붉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마치 아랍인과 닮았고, 고려사에 처용이 기이한 몸짓과 괴이한 복색을 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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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천연두나 마마라고 불렀던 두창(痘瘡), 호열자라고 한 콜레라, 마진(痲疹)이라고 불렀던 홍역 등이 대표적인 전염병이었다. 조선 후기인 1798년에 정약용은 홍역 치료에 관한 의학책인 ‘마과회통’이라는 책을 썼고, 1879년에 지석영은 서양에서 개발한 ‘종두법’을 일본인에게서 배워와 두창을 예방하는 데 큰 공을 남겼다. 이렇듯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획기적인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을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빨리 이 상황이 종식되기를 빌어본다. 역신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처용탈을 쓰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용무를 추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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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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