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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5일 금요일

연산군의 여인들 거창군부인 신씨 2편

■ 연산군의 여인들 거창군부인 신씨 2편

■ 연산군의 여인들 거창군부인 신씨 2편

거창군부인 신씨는 나름대로 남편 연산군에게 올바른 정사를 하라고 진심어린 청을 올리기도 했다. 오히려 신씨 부인이 적극적으로 연산군에게 간청을 드릴라 치면 신씨 부인의 안위(安慰)를 걱정하여 주변 상궁들이 가로막고 나섰다고 한다. 간신배에 둘러싸여 전국에서 모아온 천여명의 이쁜 운평과 그중에서도 뛰어난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삼백여명의 흥청들과 날이면 날마다 연회를 베풀고 술과 향락에 빠져 지냈으니 부인의 잔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덕(?)에 연산군의 광폭한 행동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신씨 부인은 살아남아 63세까지 장수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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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패륜행위는 놀랄만한 것 들이었다. 장녹수와 사냥을 즐기고 오다가 술에 취한 연산군이 창덕궁 금호문 앞에 있는 정업원의 비구니 8명을 겁탈한 적도 있다. 치욕을 참지 못해 그 비구니들은 전부 목을 매어 자결했다. 가장 으뜸으로 꼽을 만한 패륜은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 사건’이다. 판부사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장녹수 하고 어깨를 견줄만한 미인은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 뿐‘ 이라는 얘기로 부추긴 것이다. 월산대군은 아버지 성종의 형님이고 연산군에게는 큰아버지다. 큰어머니를 욕보이려 했다는 믿을 수 없는 패륜행위다. 연산군이 선물을 잔뜩 꾸려 백모(큰어머니)의 집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왕비 신씨는 깜짝 놀라 황급히 채비를 차려 말리러 나서자, 입시 상궁이 가로 막고 나섰다. 신씨의 안위를 걱정해서이다. 연산군은 결국 월산대군 부인을 집요하고 강압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고, 박씨부인은 동생 박원종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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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박원종은 피눈물을 쏟으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나중에 중종반정에 적극 가담하여 누나의 복수를 해내고 만다. (’연산군일기‘는 중종 때 쓰여진 것이므로, 반정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연산군의 폭정과 패륜은 일부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진위를 확실히 알 수 없는 내용도 있다.)

갑자사화가 있던 날, 연산군이 성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를 때려죽이고 장검을 뽑아든 채 대비전으로 쳐들어가자 울면서 그의 팔을 잡고 간하였는데, 그녀가 그날 연산군을 저지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연산군의 성격상 그 즉시 신씨르 베어버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연산군은 말없이 칼을 꽂고 자리를 옮겼다. 1502년 아버지 신승선이 사망할 당시의 《연산군일기》 기록을 보면, 연산군은 "신씨는 만삭이라 친상 중이지만 고기를 못 먹게 할 수는 없다" 고 하였고, 아예 거애(곡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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