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산군의 여인들 장녹수 1편
■ 연산군의 여인들 장녹수 1편
연산군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여인이고, 총애했던 후궁 중 가장 유명한 여인이 바로 장녹수이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여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장녹수는 충청도 문의 현령(文義縣令)을 지낸 장한필(張漢弼)과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에는 철저한 신분제도가 시행되었으므로 ‘일천즉천(一賤則賤)’의 법령에 따라 부모 중 한쪽이 천민이면 그 자식 역시 천민이 된다. 그러므로 장녹수는 어엿한 양반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어머니의 신분을 이어받아 천민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녀의 친언니 장복수는 내수사(內需司)의 여종이었다.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이 문의 현령으로 재임할 때 관기와 관계하여 장녹수를 낳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장녹수처럼 양반과 천첩 사이에서 태어난 여식을 얼녀(孼女)라 한다. 유명한 기생 황진이가 얼녀였고, 월매의 딸 춘향이도 얼녀였다. 그러므로 장녹수는 어머니의 운명을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기적에 들어 관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연산군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며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제안대군(大君)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따랐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 연산군일기 1502년(연산군 8) 11월 25일
연산군이 제안대군(예종의 아들)의 집에 놀러갔다가 장녹수의 노래를 듣고 크게 기뻐하여, 흥청(興淸)이라는 기생으로 발탁하여 궁궐로 맞아들였고, 왕의 총애가 날로 깊어져 마침내 후궁의 반열에 오르며 숙원으로 봉해졌다는 것이다. 연산군 시대의 신데렐라였다고나 할까?
일설에는 장녹수의 얼굴은 그리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으나, 남자를 구스르는 재주와 요사스런 교태가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산군이 얼마나 장녹수에게 빠졌는지 《연산군 일기》에 장녹수가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했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그녀는 연산군이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해도 그다지 질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친이나 사대부 부인들을 농락하는 것을 즐겨 도와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연산군의 음란한 생활과 비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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