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조와 사도세자 10편
■ 영조와 사도세자 10편
사도세자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던 중대한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은 분명하고, 상당한 정도의 살인 행각을 저지른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사도세자가 사람을 많이 죽인 사실을 기록한 문헌은 참으로 많다. 한중록에 따르면, 세자가 내관 김한채를 죽여 그의 목을 잘라 들고 궁내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혜경궁 홍씨가 노론 집안인 친정을 비호하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이 사건은 실록에서도 드러나 있다. 세자 본인의 입으로도 그 사건을 시인하고 내관 김한채를 위해 휼전을 내리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친정을 비호할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세자였던 남편, 왕이 될 아들의 친부를 살인마(殺人魔)로 거짓으로 기록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사도세자는 자신의 친자식을 낳은 후궁도 죽였고, 점치는 맹인도 죽였다. 여러 기록에 의해 확인된 것만 보더라도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의 수는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점은 영조가 세자를 폐하며 발표한 ‘폐세자반교문’의 첫머리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또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나경언의 고변이 있던 그날 밤 영조가 뜰에 엎드린 세자에게 소리친 그 첫마디 역시 살인에 대한 것이었다. 한중록에 의하면, 세자는 어머니인 선희궁 영빈 이씨의 내인(內人)을 죽인 사실도 나오는데, 어머니를 모시는 내인을 살해한 행위는 효를 강조하는 유교국가에서 용납될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점점 상태가 심각해져 심지어 친여동생 화완옹주에게도 칼을 들이댔고, 그 어머니조차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영조가 노론의 책략에 넘어가서 라던가 또는 노론의 압박에 의해 자기의 친자식을 죽이는 결단을 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영조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왕재(王才)를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더 이상 왕족으로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이코패스(?) 세자를 더 이상 더 두고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영조에게 세자는 크게는 사직(社稷)과 작게는 가문의 수치이자 골치덩어리였고, 이런 세자가 보위를 잇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폐세자(廢世子)’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후왕인 정조가 생부를 ‘폐세자’ 상태로 두기도 어려울 것이고, 만약 영조 사후 세손이 왕이 되었을 때 왕의 아비가 살인 행각을 벌일 경우 아들인 왕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즈음 세손(후일 정조)이 성군의 자질을 보였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한편, 신하들 입장에서도 이러한 세자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왕이 되어도 그렇고 ‘폐세자’가 되어 살아 있어도 그럴 것이다. 다만,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생부(生父)가 희대의 살인마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무척 참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즈음의 승정원일기는 오려지고 세검정에서 씻겨 사라져버렸다. 오려지고 통째로 찢겨져 나간 곳이 10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영조는 세자를 죽게 한 것을 매우 후회했고, 참회의 뜻으로 아들의 시호(諡號)를 직접 지어주었다. ‘생각할 사(思)’에 ‘마음 아파할 도(悼)’를 써 ‘사도(思悼)’라 지은 것이다. 묘지문도 친히 지었다. 하지만 이 일을 절대 거론하지 말 것을 엄명했다. 또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사모하는 세손(훗날 정조)의 모습에 감동하여 영조는 ‘효손(孝孫)’이라 새긴 은인(銀印:은으로 만든 도장)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 정국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영조의 처분을 지지하는 벽파와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로 당파가 나뉘었다. 사도세자의 죽음 후에도 영조는 14년이나 더 왕위를 지키면서 52년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자신을 빼닮은 능력 있는 손자 정조에게 후계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우리 역사 속에서 영·정조 시대라는 찬란한 정치·문화의 중흥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손자의 영광 뒤에는 비운의 아들이자,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