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릉王陵 3편
■ 왕릉(王陵) 3편
재위 시절 왕비 폐출과 재신임으로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했던 숙종. 그러나 사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왕비들은 그의 무덤 근처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숙종과 반대로 생전에는 3명의 왕비가 있었지만 죽어서는 1명의 왕비와도 함께하지 못한 왕이 있다. 바로 중종이다. 지금의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 부왕인 성종의 선릉 경역(境域) 내에 조성된 중종의 정릉. 중종은 3명의 왕비를 두었지만 사후에 그를 지켜주는 왕비는 한 명도 없다.
첫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신수근(연산군의 처남)의 딸이었다는 이유로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폐위되는 바람에 사후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계비로 맞은 장경왕후 윤씨와는 서삼릉의 희릉(禧陵)에 함께 묻혀 있었지만 사후에 이들은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 때문에 갈라지게 되었다. 사후에 자신이 중종 곁에 묻히고자 했던 문정왕후는 이미 중종의 무덤 옆을 지키던 장경왕후(인종의 생모)를 떼놓으려는 작업에 들어갔다. 1542년 문정왕후는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와 의논하여 지금의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왕릉을 아버지 무덤인 선릉(성종의 무덤) 부근으로 전격적으로 옮겨버렸다.
그러나 새로 옮긴 중종의 무덤(정릉)은 명당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잦아서 홍수 때는 재실(齋室)까지 물이 차기도 했다. 결국 문정왕후는 중종 곁에 묻히려는 소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사후 무덤은 지금의 태릉에 조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중종은 자신과 함께했던 왕비 3명 중 어느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버지 성종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현재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사망자 모두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현대판 왕릉인 셈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임무 수행 제일 첫 행사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4·19혁명, 5·16, 12·12 군사쿠데타,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 굴곡 많은 현대사의 주인공들이지만, 최고 집권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는 비교적 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6.25전쟁 영웅이지만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백선엽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대해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해방 후 절실했던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적 업보일 터이다. 또한, 앞으로 전직 대통령 중 국립현충원에 들어가지 못할 인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