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으로 산다는 것 7편
■ 왕으로 산다는 것 7편
조선 건국시기부터 친인척의 정치적 참여를 규제하려던 시도는 세종 때에 ‘친친(親親)’이라는 유교 논리에 따라 결정되었다. 친친은 ‘친족을 친하게 한다는 것’으로 그 의리는 4대를 넘으면 없어진다고 보았다.
이 친족의 범위에서 친척이 혹시 직무를 수행하다가 잘못하면 처벌해야 하는데, 이는 의리를 상하는 일이므로 일 자체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논리였다. 이를 근거로 세종은 왕의 4대 현손(玄孫)까지 모든 정치활동을 금하고, 대신에 이들에게는 종친부의 최고 관작을 수여하였다.
왕의 인척(姻戚)인 사위와 외척은 친척에 비해 그 규제가 약했지만, 왕족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제한을 당하기는 왕의 사위나 장인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사위들은 의빈부(儀賓府)의 직위를 받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야 했다.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치적 발언을 하면 바로 삼사관료들이 탄핵하였다.
외척은 대비나 왕비 그리고 세자빈의 가문으로 규제보다는 특혜의 측면이 많았다. 외척의 경우 제도적으로 장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명시적인 규제가 없었고, 8대까지 국가의 관리 대상이었다. 왕의 장인이 되면 영의정과 같은 품계인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를 제수 받았다. 양반들 사이에서 왕의 장인도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국구(國舅:왕의 장인)를 포함한 외척들은 사실상 조선시대 정치권의 실세였다.
왕족은 군역·신분·형사·의례 등 여러 측면에서 특권을 보장받았다. 왕족이 법을 어겼을 때 왕에게서 허락을 받아야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고, 체포 연행 시에도 항쇄(項鎖:목에 거는 쇠사슬)를 채우지 않았다. 조사할 때에는 모반대역(謀反大逆) 이외에는 고문할 수 없었다. 형량도 자신의 범죄에 해당하는 처벌보다 한 등급씩 내려서 형을 받았다.
왕족을 상대로 일반인이 죄를 지으면 3등급을 가중하여 처벌하였다. 그러나 왕족이라도 모반(謀叛:반역)에 연루되면 형사상의 특권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3대까지 처형되었다. 신분상 특권으로는 천인(賤人)이 되지 않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 사람만 천인이면 그 후손은 무조건 천인이 되는 원칙이 있었으나, 왕의 후손으로 9대 이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면천(免賤)되었다.
왕족은 군역(軍役)도 면제되었다. 특정 왕의 4대 이내 왕족은 종친부의 관직을 받음으로써 군역에서 면제되었다. 또 4대 이후의 왕족도 과거에 합격해 양반 관료가 되면 군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왕족은 특권과 함께 불이익도 있었다. 우선 특정 왕의 현손 이내 자손들은 일체 과거와 양반 관료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탁월한 정치적 재질을 가진 사람은 불우한 일생을 살아야 했다. 또 이들은 원칙적으로 거주지역이 한양에 제한되었다.
한양을 벗어나 지방을 횡행하면서 왕족이라는 신분을 악용해 민폐를 끼칠 우려가 있고, 은밀한 곳에서 반란을 도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왕족이 한양을 떠나려면 출발 날짜, 도착지, 돌아 올 날짜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왕의 허락으로 지방에 머물 때도 그 지역의 수령은 1년에 두 차례 동정을 살펴 보고해야 하였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몰래 지방을 다녀오면 중벌을 내리고, 그 지방 수령도 연대 책임을 물어 파직하였다.
- 8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