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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실록은 왕자의 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정도전 등이 임금의 병을 핑계로 왕자들을 대궐로 불러들인 다음 궁궐노비, 갑사 등을 동원하여 공격하고 자신들도 밖에서 응하기로 계획하였다.(중략)..........이윽고 왕자들이 궁궐 앞에 이르렀는데, 이방원은 궁문 앞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으로 위험한 형세를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숙번, 조영무 등 40여 명을 무장시켜 광화문 앞으로 내달았는데, 세자가 이방원 등의 군세에 놀라 전의를 상실하였다.(중략)........... 당시 정도전 등은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방원 등이 찾아가 집에 불을 지르고, 울며 살려주기를 구하는 정도전을 그 자리에서 참하였다. 이방원은 정도전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신하들을 죽이고, 이성계에게 ‘정도전 등이 반역을 꾀해 왕자와 종친들을 죽이려 하여 부득이 이들을 죽였다’는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승자(勝者)의 기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정도전이라 해도 임금의 허락 없이 어떻게 왕자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었겠으며, 왕자들을 죽이려고 궁으로 부른 정도전 등이 남은의 첩 집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은 또 무엇이며, 이방원이 40명으로 정도전과 궁궐의 관병을 모두 제압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이 하륜 등 참모와 상의하여 철저한 준비를 했고, 이성계가 병환으로 누워 있는 때에 맞추어(이성계가 누워있지 않고 직접 진압에 나섰다면 이방원의 난은 성공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일으킨 쿠데타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방원은 결국 이날 밤 정도전 등 무수한 이성계의 신하들을 죽였고, 세자를 비롯한 이성계의 전처소생 아들 두 명과 사위까지 모조리 척살(刺殺)하는 등 쿠데타를 확실하게 성공시켰다. 이로써 이성계와 정도전의 모든 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이성계는 이방원의 쿠데타로 하룻밤 사이에 평생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평생에 걸쳐 이루어 놓은 지위와 명예, 자부심까지 모조리 잃고 말았다. 그것도 아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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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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