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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원조 꽃미남

■ 원조 꽃미남

■ 원조 꽃미남

우리 역사 속 원조 꽃미남은 누구였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김춘추에 대한 역사 속 이미지는 외교관 혹은 삼국통일을 이룬 인물이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어, 그의 외모에 대한 부분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여러 역사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의 외모가 영민하고 준수했으며 아름다웠다고 전하고 있다.

「임금은(김춘추) 용모가 영준하고 늠름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을 품고 있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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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준(英俊)하다는 표현은 그의 외모가 영민(英敏)하고 준수(俊秀)했다는 뜻이다. 역사서에 굳이 그의 외모까지 기록한 것을 보면, 그의 외모가 유난히 돋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그의 외모는, 훗날 그가 당나라에 가서 군사를 요청하며 동맹을 맺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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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보내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태종이 광록경(光祿卿) 유형(柳亨)을 교외까지 보내어 그들을 맞이하여 위로하였다. 이윽고 궁궐에 당도하자 춘추의 용모가 영준하고 늠름함을 보고 후하게 대우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위 기록에 따르면, 김춘추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당태종은 사신이 올 때마다 매번 대했던 형식적인 관례로 신하를 시켜 그를 맞이했다. 그런데 김춘추가 당나라의 궁궐에 당도하자, 태종은 그의 용모를 보고는 갑자기 후하게 대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이 때 있었던 일에 대해 또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당나라 황제(당태종)는 춘추공의 풍채를 아름답게 여기고는 신성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굳이 머물러서 자신을 모시게 하려고 하였다.」 《삼국유사》

물론, 이 당시에 김춘추가 보여준 화려한 언변이 신라와 당나라가 동맹을 맺게 되는데 가장 큰 몫을 했겠지만, 사람을 끄는 그의 잘생긴 외모 또한 동맹 성사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런데 김춘추의 외모가 해외에서 먹힌 것은 당나라에서 뿐만이 아니듯 하다. 김춘추가 당나라로 가기 전 일본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일본에서는 김춘추에 대하여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춘추는 용모가 아름답고 담소를 잘하였다.」 《일본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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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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