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궤儀軌
■ 의궤(儀軌)
‘의궤(儀軌)’란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을 합한 말이다. 조선시대에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하는 주요 행사를 글이나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다. 국왕의 혼인을 비롯하여 세자책봉, 왕실잔치, 장례, 궁궐건축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전왕(前王) 때의 사례를 참고하여 거행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므로 행사 관련 기록을 ‘의궤’로 정리해둠으로써 후대에 참고로 삼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의궤라는 기록 유산이 없었다면, 오늘날 왕실 혼례식을 비롯한 궁중의식은 결코 재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의궤 중에서도 『가례도감의궤』는 활기차고 신명 나는 혼례식 장면에서 축제 분위기가 느껴진다. 특히 행사 때 사람과 기물의 배치, 행사의 주요 장면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는 오늘날로 치면 결혼식 기념사진이나 동영상 파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차도는 행사 당일에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행사 전에 참여 인원과 물품을 미리 그려서 실제 행사 때 최대한 잘못을 줄이는 기능을 했다. 오늘날 국가 행사 시 미리 도면을 그리고 대본을 만들어 리허설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도 당시 친영일은 6월 22일이었지만 친영의 모습을 담은 반차도는 6월 14일에 이미 제작되어 국왕에게 바쳐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례(嘉禮)는 원래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인데, 주로 왕실의 혼인이나 책봉 등의 의식 예법을 뜻한다. 왕실의 혼인 중에서도 왕이나 왕세자의 혼인만을 특별히 가례라고 칭했다. 현재 전해지는 조선시대 ‘가례도감의궤’를 살펴보면, 왕의 가례가 9건, 왕세자의 가례가 9건, 왕세손의 가례가 1건, 황태자의 가례가 1건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전기부터 왕실의 혼인을 위하여 ‘가례도감’이 설치되고 이때의 상황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가 편찬됐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전기의 의궤 중 현재 전해지는 것은 없다. 지금 남아 있는 『가례도감의궤』 가운데 가장 최초의 것은 1627년(인조 5년) 12월 27일 소현세자와 강빈(姜嬪)의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이며, 순종과 순종비의 결혼식을 정리한 1906년의 『순종순종비가례도감의궤』가 가장 최후의 것이다. 280년간 20건의 가례가 의궤로 정리되어 있는 셈이다.
각 국왕과 왕세자의 결혼식이 연속적으로 기록돼 있어, 의궤를 통해 조선시대 결혼 풍속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고, 각종 혼수품과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의궤에는 육례에 맞추어 조달했던 각종 의복과 물품 내역을 비롯해 의장기, 가마 등을 준비한 장인들의 명단, 소요된 물자의 구체적인 내역을 도설(圖說)과 함께 첨부했다. 게다가 그림을 그린 화원들의 이름까지도 세세히 기록하고 있어 매우 소중한 역사자료임에 틀림없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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