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적 임꺽정 3편
■ 의적 임꺽정 3편
당시 왕이었던 명종은 이들을 ‘반적(叛敵)’이라 부르며 반란군으로 규정했다. 단순한 도적이 아닌 체제도 뒤엎을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왕의 특명에도 불구하고 임꺽정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신출귀몰한 임꺽정이 잡히지 않자 그에 대한 현상금은 높아만 갔다. 임꺽정 무리가 계속 횡행하면서 조정은 이들을 잡으러 여러 사람을 보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들은 벼슬아치의 이름을 사칭하고 감사의 친척이라고 가장하면서 관가를 출입하고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였다.
1561년에는 임꺽정 일당을 잡기 위해 경기도 · 강원도 · 평안도 · 함경도 · 황해도의 군졸들이 대거 동원되어 소탕작전을 펼쳤다. 5도의 군졸들이 도둑을 잡으려 내왕하는 동안 민심은 흉흉해졌고, 관군의 물자를 대느라 백성들의 원성이 들끓었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가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때 임꺽정이 이끄는 무리들은 구월산에 들어가 험한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정부는 남치근을 토포사(討捕使:도둑을 잡는 벼슬)로 삼아 재령에 진을 치고 머물게 하였다. 남치근은 많은 병사를 모아 산을 에워싸고 한 사람도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당시 임꺽정에게는 번뜩이는 기지로 참모 역할을 하고 있던 서림(徐霖)이란 자가 있었다. 서림은 상황이 좋지 않게 되자, ‘관군이 이렇게 산을 막고 있으니 우리들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고 혼자서 몰래 관군에게 투항하기로 했다. 임꺽정 측에서 본다면 배신이었다. 서림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반을 택하였던 것이다.
서림의 투항으로 관군 측의 토벌작전은 가속도가 붙었다. 서림의 입을 통해, 임꺽정 일당이 장수원에 모여 있으면서 전옥서(典獄署)를 파괴하고 임꺽정의 아내를 구출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림을 내세워 임꺽정과 함께 있던 도적들을 유인해서 대부분 사살하였다. 이젠 임꺽정 혼자만 남았다. 임꺽정은 관군을 피해 산속을 헤매다가 마침 집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숨어들어갔다. 그 집에는 노파 혼자 살고 있었다. 임꺽정은 노파를 볼모로 잡고 협박하여 임꺽정이 달아났다고 외치라고 하였다. 겁에 질린 노파는 임꺽정이 시키는 대로 “도적이 달아났다.” 라고 외치며 집 밖으로 나갔다. 임꺽정을 알아보지 못한 군사들은 일제히 노파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러는 북새통에 임꺽정은 군사가 탄 말을 빼앗아 타고 달아났지만 심한 상처를 입어 멀리 가지 못했다. 멀리서 임꺽정을 알아 본 서림이 “임꺽정이다”라고 외쳤고, 관군들은 수많은 화살을 그를 향해 날렸다. 그토록 믿고 형제처럼 지내던 서림이 임꺽정의 최후를 부른 것이다. 관군의 화살에 약 3여 년간 경기와 황해지역을 횡행하던 도적 임꺽정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