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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6일 토요일

천녀이혼倩女離魂 - 천녀의 혼이 육체를 떠나다,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에 고민하다.

천녀이혼倩女離魂 - 천녀의 혼이 육체를 떠나다,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에 고민하다.

천녀이혼(倩女離魂) - 천녀의 혼이 육체를 떠나다,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에 고민하다.

예쁠 천(亻/8) 계집 녀(女/0) 떠날 리(隹/11) 넋 혼(鬼/4)

정신이 나가 어리둥절한 상태를 넋이 나간다고 한다. 넋은 바로잡는 얼과 함께 靈魂(영혼)과 같은 말인데 사람의 몸 안에서 육체와 정신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넋이라도 동양에서는 魂魄(혼백)이라 하여 혼은 정신을, 백은 육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魂飛魄散(혼비백산)이란 말과 같이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지만 백은 지상에 흩어져 귀신으로 떠돈다.

志怪(지괴)소설은 억울한 죽음으로 된 귀신과 요괴 등을 다룬 것으로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에 유행했다. 倩女(천녀)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육체와 혼이 떨어져 있다가(離魂) 몇 년 후에 다시 합쳐졌다는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

천녀는 唐(당)나라 代宗(대종)때 사람 陳玄祐(진현우)의 "離魂記(이혼기)"에 처음 등장한 이후 인물의 이름이 약간씩 바뀌면서 여러 시문에서 인용돼 유명해졌다. 줄거리를 간단히 보자. 옛날 張鎰(장일)이란 사람에게 천녀라는 미모가 뛰어난 딸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먼 친척의 아들 王宙(왕주)가 총명해서 나중에 부부가 되게 해 준다고 약속했다.

혼기가 되자 장일은 마음이 변하여 천녀를 높은 벼슬아치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상심하여 천녀는 드러누웠고 절망한 왕주는 고향을 떠나려고 강을 건넜다. 어두운 강기슭에서 왕주는 뒤따라온 천녀를 만나 부부가 됐고 5년을 행복하게 살며 벼슬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고향이 그리워져 장일을 찾아 용서를 구했는데 그때까지 천녀는 뒷방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배 안에서 기다리던 천녀를 데리고 오니 그 때에야 두 사람이 합쳐져 한 사람이 됐고 이후 행복하게 살았다. 이 애틋한 이야기가 宋(송)나라 無門慧開(무문혜개)의 설법서인 ‘無門關(무문관)‘에도 실려 유명한 화두가 됐다. 여기에는 淸女(청녀)로 나와 선사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청녀가 혼이 떠났는데,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진짜 청녀인가(淸女離魂 那箇是眞底/ 청녀이혼 나개시진저)?"\xa0선사들은 이것을 우리의 본성은 진짜인가 거짓인가, 혹은 선심과 惡心(악심) 중 어느 것이 마음의 본체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한다.

倩女(천녀)든 淸女(청녀)든 결국은 해피엔딩이지만 혼이 육체와 떨어져 있었던 만큼 여성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나 이루어지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성어가 됐다. 비련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소재가 되어 元(원)나라의 鄭光祖(정광조)는 내용을 발전시킨 잡극으로 탄생시켰고, 1987년 홍콩에선 줄거리를 빌려와 張國榮(장국영), 王祖賢(왕조현) 주연의 倩女幽魂(천녀유혼)이란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주위에서 아무리 혼백까지 갈라놓으려 해도 사랑이 간절하면 꺾을 수 없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혼백이 아니라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뻔히 하는 것을 보면 진실함을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