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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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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초(木/9) 옳을 가(口/2) 칠 벌(亻/4) 베풀 진(阝/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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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孔子(공자)가 엮은 역사서의 이름에서 나왔다. 堯舜(요순)의 전설과 夏商(하상)에 이어 세워진 周(주)나라는 기원전 770년 뤄양洛陽/ 낙양으로 천도한 東周(동주) 이후부터 왕보다 제후국이 강화되는 춘추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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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170여 개국이 있었다는데 주요 10여국으로 좁혀진 후 春秋五覇(춘추오패)라 하여 5개국이 세력을 떨쳤다. 楚(초)나라는 陳(진)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는 이 성어에서 강국인 남쪽의 초나라가 중앙의 소국인 진나라를 능히 칠 수 있어도 속임수가 있는지 숨어있는 이면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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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를 잇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이 쓴 戰國策(전국책)에서 유래했다. 유향은 고대 선현들의 지혜를 모은 훈계독본 ‘說苑(설원)’도 남겼다. 이 책의 權謀(권모) 편에서 성어가 나온다. 야심만만한 초의 장왕이 진나라를 칠 생각으로 사람을 보내 정탐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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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이 돌아와 ‘진나라는 공격할 수 없겠습니다(陳不可伐也/ 진불가벌야)’라고 보고했다. 왜 그런지 연유를 물으니 성곽은 높은데다 참호는 깊고, 양식도 많아 나라 안이 평안하기 때문이라고 사신이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이 보고와 달리 그렇다면 ‘진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다(陳可伐也/ 진가벌야)’며 단번에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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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장왕은 그 이유를 말한다. 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식량을 많이 쌓아 두었다면 세금이 무거웠을 것이고(蓄積多則賦斂重/ 축적다즉부렴중), 가혹하면 임금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자할 것(賦斂重則民怨上矣/ 부렴중즉민원상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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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곽과 참호가 튼튼하다면 필시 백성들이 동원되어 힘이 고갈됐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는 군대를 일으켜 손쉽게 진나라를 손에 넣었다. 장왕은 진나라를 쳐서 세력을 떨쳤어도 전통의 제후국인 鄭(정), 宋(송)나라와 함께 멸망시키지는 않아 五覇(오패)의 지위를 누리며 23년간 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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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왕은 자국의 능력보다 지나치게 국력을 낭비한 진나라의 허점을 잘 간파한 눈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나라가 국력을 생각하지 않고 전쟁에 대비하느라 소진하면 민심이 먼저 떠나고 결국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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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이웃나라를 힘으로 누를 수 없는 오늘날에는 속으로 곪는 일이 많다. 들어올 예산은 감안하지 않고 저소득층을 위한다며 흥청망청 퍼주기 인기정책을 펼치다 후세에 빚만 남기고 나라는 쪼그라드는 예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우리나라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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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초(木/9) 옳을 가(口/2) 칠 벌(亻/4) 베풀 진(阝/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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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孔子(공자)가 엮은 역사서의 이름에서 나왔다. 堯舜(요순)의 전설과 夏商(하상)에 이어 세워진 周(주)나라는 기원전 770년 뤄양洛陽/ 낙양으로 천도한 東周(동주) 이후부터 왕보다 제후국이 강화되는 춘추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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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170여 개국이 있었다는데 주요 10여국으로 좁혀진 후 春秋五覇(춘추오패)라 하여 5개국이 세력을 떨쳤다. 楚(초)나라는 陳(진)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는 이 성어에서 강국인 남쪽의 초나라가 중앙의 소국인 진나라를 능히 칠 수 있어도 속임수가 있는지 숨어있는 이면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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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를 잇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이 쓴 戰國策(전국책)에서 유래했다. 유향은 고대 선현들의 지혜를 모은 훈계독본 ‘說苑(설원)’도 남겼다. 이 책의 權謀(권모) 편에서 성어가 나온다. 야심만만한 초의 장왕이 진나라를 칠 생각으로 사람을 보내 정탐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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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이 돌아와 ‘진나라는 공격할 수 없겠습니다(陳不可伐也/ 진불가벌야)’라고 보고했다. 왜 그런지 연유를 물으니 성곽은 높은데다 참호는 깊고, 양식도 많아 나라 안이 평안하기 때문이라고 사신이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이 보고와 달리 그렇다면 ‘진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다(陳可伐也/ 진가벌야)’며 단번에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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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장왕은 그 이유를 말한다. 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식량을 많이 쌓아 두었다면 세금이 무거웠을 것이고(蓄積多則賦斂重/ 축적다즉부렴중), 가혹하면 임금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자할 것(賦斂重則民怨上矣/ 부렴중즉민원상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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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곽과 참호가 튼튼하다면 필시 백성들이 동원되어 힘이 고갈됐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는 군대를 일으켜 손쉽게 진나라를 손에 넣었다. 장왕은 진나라를 쳐서 세력을 떨쳤어도 전통의 제후국인 鄭(정), 宋(송)나라와 함께 멸망시키지는 않아 五覇(오패)의 지위를 누리며 23년간 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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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왕은 자국의 능력보다 지나치게 국력을 낭비한 진나라의 허점을 잘 간파한 눈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나라가 국력을 생각하지 않고 전쟁에 대비하느라 소진하면 민심이 먼저 떠나고 결국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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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이웃나라를 힘으로 누를 수 없는 오늘날에는 속으로 곪는 일이 많다. 들어올 예산은 감안하지 않고 저소득층을 위한다며 흥청망청 퍼주기 인기정책을 펼치다 후세에 빚만 남기고 나라는 쪼그라드는 예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우리나라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