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조반정 5편
■ 인조반정 5편
어느 날, 갑자기 능양군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쳐오게 된다. 능양군의 일당인 이귀와 김자점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이 결국 광해군의 귀에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능양군과 그의 무리들의 목숨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이들은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귀는 “날 모함하는 놈들과 대질을 시켜 달라.” 고 말하며 정면 돌파를 꾀했다. 또한 김자점은 당시 광해군의 깊은 신뢰를 받으며 어마어마한 권세를 누리고 있던 상궁 김개시에게 접촉하여 뇌물을 주었다. 김개시의 언변에 넘어간 광해군은 결국 역모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고, 이귀를 탄핵하는 대북세력들의 거센 주장들을 무시한 채 그를 비호했다. 이렇게 해서 이귀와 김자점은 간신히 화를 면하는데 성공했고, 이들과 함께 거사를 도모하던 능양군 역시 놀란 가슴을 겨우 쓸어내렸다. 이후 능양군 세력은 몰래 군사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며 정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1623년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능양군 세력에 가담했던 장유의 아우 장신의 사위인 이흥립까지 포섭하여 반정세력에 가담시켰다. 이흥립은 당시 광해군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던 훈련도감의 수장이었는데, 그의 합류는 반정세력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드디어 거사일인 3월 12일이 되었다. 하지만 거사 당일에 또 한 차례 위기가 닥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이반이라는 자가 이들의 역모계획을 김신국에게 보고했고, 김신국은 이를 다시 영의정 박승종에게 보고하면서 이들의 거사 계획이 탄로났기 때문이다. 역모 사실을 보고 받은 박승종은 추국청(推鞫廳)을 설치하여 수사 준비를 마친 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잡아들일 인물들의 명단을 만든 뒤, 이를 허가 받기위해 곧바로 광해군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때 광해군은 여러 후궁들과 술판을 벌이느라 잔뜩 취해있었고, 박승종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이로 인해 박승종의 호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에 박승종은 반정세력에 넘어간 훈련대장 이흥립을 불러다가 다그쳤다. 하지만 이흥립이 계속 시치미를 떼자 박승종은 결국 그를 풀어주고 마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3월 12일 밤 12시경 무렵 최명길, 김자점, 심기원 등이 군사를 이끌고 창의문(彰義門·서울의 북소문)에 이르렀다. 빗장을 부수고 들어간 반정군은 그들을 체포하러 온 금부도사와 선전관을 육조 앞길에서 베었다. 곧바로 창덕궁에 이른 반정군은 돈화문을 도끼로 찍었다. 이미 반정군과 내통하고 있었던 훈련대장 이흥립의 명에 의해 금호문은 쉽게 열렸다.
창덕궁 전각들에 불을 지르며 반정군은 광해군 침소를 급습했다. 반정군은 창덕궁 안 함춘원 나무 풀숲에 불을 지르는 것을 반정 성공의 신호로 삼았다. 만약 불길이 치솟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자결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한편, 반란 소식을 들은 광해군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고, 주변의 신하들은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기 바빴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