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1편
■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1편
중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조선 제12대 왕 인종이다. 인종은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보아도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왕이다. 그만큼 재위기간도 짧았고 외척들의 정쟁 속에서 제대로 기를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종은 중종의 첫부인인 신씨가 폐비되고 맞이한 첫 번째 계비(繼妃) 장경왕후의 아들이다. 태어난 이듬해에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죽어 궐 밖으로 보내져 재상가에서 성장하였는데, 그 총명함에 신료들이 모두 탄복할 지경이었다.
인종은 관례보다 빠른 6세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 되었고, 커가면서 이상적인 군주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어린 세자를 둘러싼 주위 환경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즉, 중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경빈 박씨의 소생인 복성군이 있었고, 새로 중전이 된 문정왕후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인 중종은 외척(대윤-소윤)들의 정쟁 속에서 불안한 자신의 왕위 보존에만 관심이 있을 뿐, 대승적 견지에서 세자의 입지를 뒷받침 할 만 한 토대를 전혀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자(인종)의 어린 시절에 ‘작서의 변(경빈 박씨와 복성군 사사, 그 후 진범인 김안로 사사)’과 같은 해괴한 사건이 일어나는 등 인종은 말만 세자일 뿐, 장차 앞날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 문정왕후는 왕비에 책봉된 지 무려 17년 만에 아들(경원대군)을 낳아 문정왕후의 힘과 야심은 더욱 커지고, 세자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졌다. 이 후 정국(政局)은 세자의 후원자 역할을 자청(自請)한 세자의 외삼촌 윤임과 문정왕후의 친동생인 윤원형이 대립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전자를 대윤(大尹), 후자를 소윤(小尹)이라 불렀다. 외척간의 충돌이 시작된 셈이다.
세자의 나이 서른이 되도록 후사가 없자, 기회를 노리던 소윤 측의 야심은 더욱 불타올랐다.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왕으로 만들 야심을 갖고 세력을 불려나갔고, 그 전면엔 동생 윤원형이 있었다. 중종 38년에는 동궁전에 큰 불이 났는데, 야사에는 이 불이 소윤 측에서 세자를 제거하기 위해 낸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자의 입지는 불안했다. 사실여부는 알 수가 없으나, 어쨌든 결국 소윤 측은 세자를 제거하지 못했고, 중종이 죽은 후 세자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그들의 희망도 사라지는 듯 보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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