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2편
■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2편
조선 12대 왕 인종은 천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계모인 문정왕후를 극진히 모셨고, 아들 나이 뻘인 이복동생 경원대군을 언제나 우애로 대했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인종의 어진 성품을 이용하여 오히려 인종에게 억지를 부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인종은 문정왕후를 더욱 지극히 대우하였다.
인종은 재위 8개월 만에 죽게 되는데, 이는 조선 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짧은 것이다. 인종이 이렇게 단명한 데 대해 그 원인으로 보통 두 가지가 거론된다. 실록에는 왕위에 오른 인종이 효심이 지극하여 부친인 중종의 장례를 예법에 맞게 원칙적으로 극진히 지낸 관계로 몸이 혹사되었고, 이로 인해 신하들이 내내 “수라를 드시옵소서, 고기를 드시옵소서, 옥체보존은 선왕에 대한 제사 못지않게 중요하옵니다” 는 주청을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결국 인종은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한편, 야사에는 문정왕후가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 인종을 독살했다는 내용이다. 문정왕후의 전후 행태, 성품, 인종 사망 전까지의 각종 사건 사고, 세자시절에 특별히 지병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점, 보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갑자기 사망한 점 등을 들어, 인종 독살설을 기록하고 있는 야사가 많은 것으로 보아, 문정왕후의 인종 독살설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왕 재목으로 촉망 받던 인종은 31세의 나이로 즉위 8개월 만에 죽고, 이복동생 경원대군이 13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명종이다.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황후는 왕이 어린 관계로 자연스럽게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고, 조선시대 최고의 여걸로서 조정세력을 손안에 쥐게 되었다.
문정왕후(대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조정의 실권은 윤임을 필두로 한 대윤에서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로, 윤원형을 필두로 하는 소윤으로 넘어갔다. 문정대비의 세력을 배경으로 한 소윤 측 윤원형은 그 측근인 임백령 등을 동원하여 대윤 측의 대표 윤임이 그의 조카인 봉성군을 옹립하는 역모를 꾀했다 하여 무고함으로써, 윤임·유관·유인숙 등 무수한 신료와 선비들을 사사하니 이것이 바로 을사사화(乙巳士禍)이다.
을사사화는 표면적으로는 윤씨 외척간의 싸움이었으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으로서,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이후 약 50년간 이어온 신료와 선비들이 대규모 정쟁(政爭)이 이로써 마지막이 되었다.
※ 4대사화 : 무오사화, 갑자사화(이상, 연산군), 기묘사화(중종), 을사사화(명종)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