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4편
■임진왜란 4편
일본군은 바다를 건너오는 보급품이 이순신에 의해 차단당하고 조선에서는 보급품을 구할 수 없게 되어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일본은 명나라와 강화협상을 진행했으나, 일본의 무리한 요구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히데요시는 명나라가 화평을 적극적으로 나서자 입장이 바뀌어 전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한 지역을 아주 본보기로 폐허로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정유년에 히데요시의 동원령으로 소집된 군사는 총 12만 1천여 명으로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으로 불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논개의 이야기는 이 정유재란이 일어난 진주의 이야기이다. 2차 조선정벌군이 진주를 습격하자 7천 명의 조선군은 맹렬히 항전하였다. 12만과 7천의 대결은 9일간의 긴 싸움으로 막을 내리고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된다.
일본군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진주를 생명이 없는 폐허로 만들기 위해 모든 생명과 건축물 등을 죽이고 불태웠다. 진주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폐허가 된 지역에서 버티기 위해 경상도 남해안 일대에 일본식 성을 쌓고 장기전으로 버티기에 들어간다. 이로써 전쟁은 다시 소강상태로 들어가고, 서울을 떠난 선조는 17개월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궁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에서는 히데요시가 사망하게 된다. 히데요시가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장장 7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린다. 일본은 전쟁이 일어나면 단숨에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이 몰랐던 3가지 사실이 있었다.
첫째, 왕이 궁궐과 백성을 버리고 도주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선조의 도망은 전쟁을 장기화 시켰고, 이 때문에 전쟁물자 수송은 승패의 큰 요소로 작용했다.
둘째, 여진족의 존재를 몰랐다. 여진족은 예로부터 숙신, 읍루, 말갈, 물길로 불리는 강력한 세력이었는데, 이를 간과한 일본은 두만강을 건너 여진족과 싸우다 크게 패했다.
셋째, 그들은 전쟁의 신 이순신의 존재를 몰랐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일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물자 보급이다. 일본의 수군은 전라도 앞바다를 지나 한양으로 물자를 보급하고자 하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순신장군이 그 물자 보급로를 모조리 끊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장군이 우리나라의 구국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