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지지立錐之地 -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 조금의 여유도 없음
입추지지(立錐之地) -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 조금의 여유도 없음
설 립(立/0) 송곳 추(金/8) 갈 지(丿/3) 따 지(土/3)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집이나 땅이나 많이 가질수록 좋다고 여긴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Leo Tolstoy)의 단편이 있다.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우리 설화에도 있다. 최고의 땅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쟁이에게 보이는 땅 전부를 가지라고 한다. 단 조건이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뚱 살 뚱 안간힘을 다해 뛰었지만 돌아와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선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혔다. 돌아갈 때 필요한 땅은 한 평에 불과하다. 아니 화장이 대중화된 요즘은 그 땅도 필요하지 않다.
송곳의 날카로운 끝을 세울(立錐) 땅도 없다는 말은 물론 과장이지만 매우 좁아 조금의 여유도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발 들여놓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경우를 비유하기도 한다. 置錐之地(치추지지), 彈丸之地(탄환지지)라고도 한다. 司馬遷(사마천)은 뛰어난 기지와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친 인물들을 ‘史記(사기)’의 滑稽(골계)열전에 모았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 莊王(장왕)때에 풍자에 능했던 배우 優孟(우맹)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성어가 나온다.
우맹의 재주와 인품을 알고 당시의 청렴했던 재상 孫叔敖(손숙오, 敖는 거만할 오)는 그를 따뜻이 대해 주었다. 얼마 뒤 손숙오가 죽게 되자 아들들에게 어려울 때 우맹을 찾으라고 했다. 남긴 재산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지자 아들들은 우맹을 찾았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우맹은 손숙오의 생전 모습을 하고 장왕을 찾았다. 죽은 손숙오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여겼던 장왕은 재주 좋은 우맹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다음날 우맹이 말했다. ‘초나라의 재상을 지내고서도 그 아들은 송곳조차 세울 땅이 없어, 땔나무를 져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其子無立錐之地 貧困負薪以自飲食/ 기자무립추지지 빈곤부신이자음식)’면서 재상직을 거절했다. 장왕이 크게 깨닫고 손숙오의 아들들에게 400호를 하사했다.
비유가 적합해서인지 많은 고전에서 이 말이 인용됐다. 그래도 실생활에선 욕심이 넘쳐난다. 수십억 원하는 집을 여러 채 갖고서 더 사들이려 하고, 졸부로 만들어준 땅도 기회만 되면 늘리려 한다. 온갖 규제도 무위로 만드니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그 많은 재산을 갖고 떠나는 재주는 갖고 있지 못할 터인데 괜히 걱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