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들 야(里/4) 쥐 서(鼠/0) 갈 지(丿/3) 혼인할 혼(女/8)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속담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자기의 짝은 있다는 말이다. 두더지(野鼠)의 짝은 어떤 것이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두더지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새끼의 짝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청을 넣어보다 결국은 같은 종족인 두더지가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엉뚱한 허영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부록으로 유명한 洪萬宗(홍만종)의 문학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 소개돼 있다.
어느 때 한 두더지가 자식을 위해 좋은 혼처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은 항상 땅속에서만 생활하여 못마땅해 했는데 자식에게는 넓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늘의 태양이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 하늘에 청혼하니 ‘내 비록 세상을 품고는 있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가 없네’ 하며 거절했다.
두더지는 이번에 해와 달을 찾아 혼처로 구했지만 ‘나는 구름이 가리면 세상을 비출 수 없다’며 손사래치고, 다시 구름을 찾아가 청혼을 하니 ‘내 비록 해와 달의 빛을 가릴 수는 있지만 바람이 한번 불면 흩어질 뿐이네’ 하고 돌아섰다. 할 수 없이 바람을 찾아가 구혼하니 ‘내가 구름을 흩어지게는 하지만 저 밭 가운데의 돌부처는 끄떡도 할 수 없으니 저보다 못하네’ 하여 돌부처를 찾아가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비록 거센 바람도 무섭지 않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밑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넘어지고 말지(我雖不畏風 惟野鼠 穿我足底 則傾倒/ 아수불외풍 유야서 천아족저 즉경도). 그래서 두더지가 나보다 낫다네.’
부지런히 새끼의 좋은 짝을 구하러 다니던 두더지는 이 말을 듣고 기고만장하여 ‘천하에 높은 것이 나만한 게 없구먼’ 하며 동족 두더지와 혼인을 시켰다. 잘 어울리는 배우자는 자신이 안다. ‘결혼은 자기와 동등한 자와 할 일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그러니 지체 높은 집과 하는 仰婚(앙혼)이 처음에는 보란 듯이 내세우다가도 실제 생활은 불행에 이르는 일이 많다. 결혼 시즌에 대사를 앞둔 청춘남녀들이 한 번 더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