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오훼長頸烏喙 - 긴 목에 뾰족한 입, 사람의 관상을 표현한 말
장경오훼(長頸烏喙) - 긴 목에 뾰족한 입, 사람의 관상을 표현한 말
긴 장(長/0) 목 경(頁/7) 까마귀 오(灬/6) 부리 훼(口/9)
단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첫인상이 나쁘면 호감이 가기 어려우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만약 목이 길고(長頸) 입이 새의 부리처럼 뾰족 튀어나왔다면(烏喙) 어떤 인상을 줄까. 사슴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읊은 시가 있었는데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서라 했다. 아무래도 사람의 목이 기린같이 너무 길면 비호감이기 쉽다. 까마귀 부리처럼 길게 튀어나온 입도 경망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말은 사람의 관상을 표현할 때 쓴다고 하며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越王(월왕) 句踐(구천)의 모습을 나타낼 때 썼다.
구천은 처음 이웃 吳王(오왕) 闔閭(합려)를 죽여 두각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臥薪嘗膽(와신상담)의 흥미진진한 고사가 따른다. 합려의 아들 夫差(부차)는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칼을 갈았고 곧 구천과 전쟁을 벌여 대승했다. 會稽山(회계산)으로 쫓겨 간 구천은 책사 范蠡(범려, 蠡는 좀먹을 려)의 건의로 대부 文種(문종)을 부차에 파견하여 항복을 애원했다. 미인 西施(서시)까지 보낸 뇌물작전이 통해 목숨을 부지한 구천은 처지가 바뀌어 쓸개를 핥으며 노예생활을 10년이나 이어가야 했다. ‘史記(사기)’ 越世家(월세가) 등에 박진감 있게 묘사된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부차가 齊(제)나라를 정벌하러 나라를 비운 사이 구천이 정예병을 이끌고 오에 쳐들어가 마침내 복수에 성공했다. 20년을 보좌하여 구천을 마지막 覇者(패자)로 오르게 한 범려는 자기 일이 끝났다며 작별을 고했다. 구천의 사람됨을 꿰뚫어 보았던 범려는 제나라에 간 뒤 문종에게 편지를 썼다. ‘월왕의 얼굴은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 주둥이를 닮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법이오(越王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월왕위인장경조훼 가여공환난 불가여공락).’ 그러면서 문종에게도 빨리 떠나라고 조언했다.
얼굴 생김새가 성격과 운명까지 좌우한다고 믿어지지 않지만 범려가 본 구천은 틀림이 없었다. 문종은 이후 병을 핑계로 두문불출했으나 모함을 받은 구천은 살려두지 않았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는다(狡兎死 走狗烹/ 교토사 주구팽)는 것을 알았던 범려는 이후 陶朱公(도주공)이란 큰 부호로 여생을 보냈다. 오늘날 기형의 얼굴은 예사로 성형하여 모습을 바꾼다. 얼굴은 자연의 작품이고 나이가 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수양을 해서 덕이 자연스레 배어나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싶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x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