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2편
■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2편
이성계는 1389년에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추대했다. 이 시점에 이성계의 세력은 이미 상당히 공고해져 있었지만, 무리하게 왕위를 탐내지 않고 공양왕이 스스로 왕위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공양왕은 의외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성계 정권은 공양왕을 몰아내기로 했다. 하지만 고려 왕실의 웃어른(공민왕 부인)이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는 형식을 취했다.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 유고인 경우에 태후(대비)나 왕후를 비롯한 왕실 여성 어른들이 비상 대권을 행사했는데, 이성계는 이런 관행을 활용했던 것이다.
"이성계는 고려 태후의 결단에 의해 고려 왕권을 넘겨받는 형식을 취했으므로, 왕위에 오른 1392년 8월 3일(양력)부터 1393년 3월 26일까지 이성계는 형식상으로는 고려왕이었다. 1393년 3월 27일부터 정식으로 조선왕이 된 것이다. 실제로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고려왕조를 이어받아 조선을 세우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모인 정도전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정적인 방법으로 이성계를 고려의 왕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심했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에 최대한 합법적이고 단계적인 건국 프로젝트 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방원은 정도전이나 이성계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 백주대낮에 수도 개경에서 철퇴로 정몽주를 죽이는 방법으로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이런 야만적인 방식은 고려 지식인들이 이성계 정권에 환멸을 느끼도록 만들었고, 이들 중 일부가 백년 가까이 조선왕조와의 타협을 일체 거부한 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성계 옆에 정도전이 없었다면 이성계 정권은 매사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방원의 저돌적인 방식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계의 대권이 이미 공고해진 상태에서 이방원이 거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만약 정도전이라는 특급 참모가 가세하지 않았고, 대권이 공고해지기도 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건국 문턱에 가보지도 못했을 지도 모른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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