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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정도전의 시대 1편

■ 정도전의 시대 1편

■ 정도전의 시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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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일곱 번 째 아들인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방원은 엄청난 실망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만약 장자상속원칙에 따라 맏형인 이방우가 세자에 책봉되었다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조선 건국과정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자신이 세자에 책봉되어야 함이 당연한데, 계모인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니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당시 세자로 책봉된 이방석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자신의 분노를 당장 표출하기보다는, 내색하지 않고 철저하게 숨기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은 정도전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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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건국 초기 정도전, 남은, 조준 등 일부의 공신들을 철저히 신임했고, 이 중에서도 정도전에 대한 태조의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정도전은 조준과 함께 고려사를 편찬하는가 하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는 표문을 가지고 직접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정도전은 정치적 능력은 물론이고, 야망도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이미 태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태조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세자 책봉과정에서 이방석을 지지하면서 이방원과 갈등을 빚게 된 상황이라, 만약 태조가 갑자기 병석에 눕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신변이 상당히 위태롭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자신의 세력을 뒷받침해줄 또 다른 힘, 즉 군사력이 필요했는데, 원래 무관 출신이 아닌 그의 입장에선 그럴만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한 당시 무관 출신이 아닌 이상 합법적으로 군사력을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반면에 그를 제외한 무관 출신의 공신들이나 이방원과 같은 왕실 종친들은 이미 사병(私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병들은 국가가 아닌 자신의 주인에게만 충성을 바쳤기 때문에, 여차하면 그들의 사병이 정도전의 목을 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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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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