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과 강아의 사랑 2편
■정철과 강아의 사랑 2편
가녀린 몸으로 삼천리(三千里) 길을 걸어서 강계로 달려온 강아는, 위리안치되어 하늘 한자락 보이지 않게 가시나무로 둘러싸인 초라한 초막에서 홀로앉아 책을 읽는 정철의 초췌한 모습에 진주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자기 앞에 엎드려 울고 있는 어여쁜 여인을 본 정철은 당황해 하면서 그녀에게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의 강아는 십 여세의 어린 소녀였으므로, 성장한 강아의 모습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정철의 유배생활은 조금도 괴롭거나 우울하지 않았으며, 정철의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강아는 항상 정철의 곁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기쁨을 주었다. 강아는 단순한 생활의 반려자나 잠자리 시중을 드는 기녀가 아니었다. 정철에게 강아는 그 이상의 존재였고, 예술적 호흡을 가능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울음을 그친 강아가 정철에게 조용히 입을 열고 말하였다. “저를 어찌 몰라보시는지요? 10 여 년 전에 나으리께서 머리를 얹어 주시었던 진옥이옵니다.” 강아는 정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는 것과 귀양소식을 듣고서 그를 보살피고자 부랴부랴 달려왔음을 고하였다. 희미한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서 강아를 마주한 정철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 그녀에게서 여인의 향기를 느꼈다. 술이 거나해진 정철이 무거운 정적을 깨고 강아에게 말했다.
"진옥아! 내가 먼저 한 수 읊을 터이니, 너는 화답(和答)하거라. 지체해서는 안 되느니라. 옥이 옥이라하여 번옥(燔玉:돌가루를 구워 만든 옥)으로만 여기었더니, 이제 보아하니 진옥(眞玉:진짜 옥)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살 송곳이 있으니 한번 뚫어볼까 하노라."
탁월한 시인이던 정철은 강아에게 노골적인 음사(淫事)를 시의 형태를 빌어서 읊었다. ‘번옥(燔玉)’은 어리게만 여겼던 강아를 은유한 것이고, ‘진옥(眞玉)’은 이제는 어엿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성숙한 강아를 은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남녀 간의 육체적 합일(合一)을 바라는 그의 마음이 배어있는 시이다. 강아는 지체없이 화답하였다.
"철이 철이라 하여 석철(石鐵)이라 여겼더니 이제 보아하니 정철(正鐵:진짜 철)이 분명하고, 마침 나에게는 골풀무가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이 대담한 강아의 시는 당대의 대 문장가인 정철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강아는 정철을 쇠로 비유하며, 자신을 여자로 받아주지 않았던 정철을 석철(石鐵)에 비유하였고, 이제 믿음직한 남성으로 자신을 여인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정철을 정철(正鐵)이라 은유하였다. 그리고 철을 녹일 수 있는 골풀무가 자신에게 있으니 이제 녹여 줄 수 있다며 응수한 것이다. 골풀무란 불을 피울 때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인데, 강아는 이것을 남자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로 은유했으니, 이만하면 강아도 명기(名妓)요 훌륭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