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희왕후 윤씨 3편
■ 정희왕후 윤씨 3편
죽은 의경세자의 큰아들인 월산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둘째인 잘산군(자을산군)을 즉위시킨 것은 세조의 유언이 있었다는 이유를 댔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사실은 정희왕후 윤씨와 잘산군의 장인인 한명회와의 정치적 결탁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딸을 잘산군과 혼인시킨 한명회는 병조판서 박중선의 딸과 결혼한 월산대군이 왕위에 오르면 자신의 입지가 약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원상(院相:왕이 죽은 뒤 임시로 정무를 보던 벼슬)들과 논의해서 윤씨를 움직인 것이다. 원상(院相)들로서도 정통성이 부족하고 어린 잘산군이 즉위할 경우 그만큼 자신들의 권력도 강화될 수 있었으므로 한명회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마침내 조선의 제9대 임금으로 잘산군이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성종이다. 그리고 정희왕후 윤씨가 수럼청정을 하게 된다. 수렴청정은 왕실 여인 중 가장 어른이 왕이 앉아 있는 용상 뒤에 발을 드리우고 앉아 섭정(攝政)하는 것을 말한다. 사극에서 가끔 등장하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섭정을 시작한 윤씨는 가장 먼저 종친(宗親) 정리 작업에 나섰다. 당시 종친 중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던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아들 귀성군을 귀양 보내고 종친의 관리등용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28살의 나이로 영의정에 올랐던 귀성군의 제거는 다른 종친들에게도 압박을 주어 어린 왕을 위협할 소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어서 윤씨는 월산군과 제안군을 대군으로 승격시켜 왕위계승권에서 밀려난 왕자들의 불만을 무마하려하였다. 당시 왕실의 종친들은 언제 누구에 의해 왕으로 추대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므로, 잘못 연루되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은 가급적이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듯이 자신을 낮추고 살았다. 제안대군은 노래를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루는 예술가였으며, 월산대군은 스스로 풍류가임을 자처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덕분에 천수(天壽)를 누리며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윤씨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를 신원(伸冤:억울함을 풀어줌)함으로써 단종의 원혼을 달래주려고 애썼다. 송씨의 노비를 돌려주고 동생인 송거에게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송씨가 정종의 아들 정미수를 양자로 삼아 단종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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