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시작 1편
■ 조선의 시작 1편
7월 17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공포된 제헌절(制憲節)이다. 1392년 7월 17일은 조선이 시작된 날이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제일 첫 문장은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올랐다”이다. 수창궁은 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에 있던 왕의 정전(正殿)이다. 그 날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의 대소신하 50여 명과 한량기로(閑良耆老, 70세가 넘어서 퇴직한 2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은 하루 전인 7월 16일 국새(國璽:나라를 대표하는 도장)를 받들고 태조의 사저(私邸)로 찾아간다.
사람들이 골목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태조는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와 밥을 먹고 있었다. 태조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 씨는 태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년 전 이미 돌아가셨다. 태조는 문을 걸어 잠그고 신하들을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배극렴 등 신하들은 해 질 무렵까지 기다리다가 마침내 대문을 밀치고 마당으로 들어가서 국새를 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이보다 앞서 시중 배극렴 등은 공민왕의 부인 왕대비에게 “현재의 왕(공양왕)이 도리를 잃고 백성의 민심도 떠났으므로 사직과 백성을 다스릴 수 없으니 왕을 폐하소서” 라고 아뢰었고, 왕대비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공양왕을 폐위하는 교지(敎旨)를 내렸다. 남은과 문하평리 정희계가 왕대비의 교지(敎旨)를 받들고 공양왕이 머물고 있는 궁으로 가서 공양왕의 폐위를 선포했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이렇게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로 내려갔다. 왕의 자리가 빈 것이다.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5일 전이었다.
왕대비는 국새를 받아 보관하고 그 다음날 교지를 내려 태조로 하여금 국사를 맡아보도록 하였다. 태조는 즉위하기 4일 전에 이미 사실상 국정을 손아귀에 넣었던 것이다. 태조의 사저 마루 위에 놓여있는 국새는 왕대비가 공양왕으로부터 받아서 보관했던 것을 신하들이 왕대비로부터 다시 받아서 태조의 사저로 가지고 갔던 것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