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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7일 일요일

주경야송晝耕夜誦 -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을 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부지런히 공부하

주경야송晝耕夜誦 -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을 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다.

주경야송(晝耕夜誦) -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을 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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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주(日/7) 밭갈 경(耒/4) 밤 야(夕/5) 욀 송(言/7)

부지런한 농부는 낮에는 밭을 갈고(晝耕) 씨를 뿌리며, 밤에는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았다. 가난한 선비는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는 책을 외웠다(夜誦). 이렇게 하여 넉넉지 못한 생활에도 부를 일궜고 벼슬을 얻었다. 고생 끝에 성공하는 부지런함을 말할 때마다 등장하는 말인데 더 귀에 익기로는 晝耕夜讀(주경야독)이다.

밤에 글을 외거나 책을 읽거나 조금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같은 뜻이지만 처음 출전에는 夜誦(야송)으로 되어 있고, 夜讀(야독)은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쓴다. 그것도 조선 중기 이후 문집에 가끔 등장하니 역사가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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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光(최광, 450~523)이란 사람은 중국 北魏(북위)의 명신이었다. 後魏(후위)라고도 하는 북위는 曹操(조조)의 아들 曹丕(조비)의 魏(위)나라 말고 鮮卑(선비)족이 세운 나라다. 본명이 孝伯(효백)인 최광은 7대 孝文帝(효문제)가 내린 이름이다. 그의 이야기는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北齊(북제)의 魏收(위수)라는 사람이 편찬한 ‘魏書(위서)’에 실려 전한다. 중국 二十四史(이십사사)에 포함되는 정사인 위서는 물론 三國志(삼국지)의 한 부분인 위서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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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가 등장하는 列傳(열전) 중의 최광의 부분을 보자. ‘그의 집안은 가난하였으나 배우기를 즐겨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외웠으며, 다른 사람에게 글을 필사해 주는 일을 하며 부모를 봉양하였다(家貧好學 晝耕夜誦 傭書以養父母/ 가빈호학 주경야송 용서이양부모).’ 이렇게 학문에 정진하여 나중에는 中書博士(중서박사), 太子太傅(태자태부)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를 중용한 효문제는 이렇게 극찬했다. ‘효백의 재주는 넓고 깊어서 황하가 동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孝伯之才 浩浩如黃河東注/ 효백지재 호호여황하동주).’ 그러면서 숭앙하는 대문장가 文宗(문종)이라 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찬란한 성취를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은 아무래도 요즘은 뜸하다. 물론 가정교사를 거쳐 고시를 통과한 고위직의 이야기나 틈틈이 공부하여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며 화제를 끌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학의 진학률이 이전에 비할 수 없이 높고, 실업계나 야간부 학생이 줄어든다니 생활수준이 높아진 덕분일까. 그러면서도 실업률은 높은 것은 고생을 꺼려하는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