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여귀視死如歸 - 죽음을 편안히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
시사여귀(視死如歸) - 죽음을 편안히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
볼 시(見/5) 죽을 사(歹/2) 같을 여(女/3) 돌아갈 귀(止/14)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 했다. 사람 목숨이 그만큼 덧없다. 왕이나 거지나 죽음은 모두에 공평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어차피 한 번 죽게 마련인데 쓰임에 따라 이룬 일에 따라 泰山鴻毛(태산홍모)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구차하게 목숨을 빌다 개죽음을 당하는 貪生怕死(탐생파사, 怕는 두려워할 파)도 있고, 영광의 최후를 맞아 영원히 추앙받기도 한다. 적탄을 맞고도 왜군을 물리치고 승리로 이끈 忠武公(충무공)이 바로 죽음으로써 살아난 必死則生(필사즉생)의 삶을 살았다.
죽음을 여기기(視死)를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안다(如歸)는 이 말도 용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옳은 길을 향하여 돌진하는 용사들이 떠오른다. 중국의 고전 곳곳에 이 말이 사용됐다.
먼저 呂不韋(여불위)가 빈객들의 지혜를 모은 ‘呂氏春秋(여씨춘추)’의 士節(사절)을 보자. ‘어려운 일에 임해서는 이익을 잊고, 생명을 돌보지 않고 의로움을 행할 때는 죽음 보기를 마치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긴다(臨患忘利 遺生行義 視死如歸/ 임환망리 유생행의 시사여귀).’ 죽음으로 보답하는 선비들의 절개에 대해서 강조했다.
齊(제)나라 桓公(환공)이 管仲(관중)에게 관리를 뽑으면서 조언을 구했다. 관중은 청렴한 사람에 형벌을 관장하게하고, 공손한 사람에게 접객을 맡겨야 한다며 잇는다. ‘삼군을 지휘하고 진영을 만들어 병사들로 하여금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바라보게 하는(三軍既成陣 使士視死如歸/ 삼군기성진 사사시사여귀)’ 成父(성보)란 공자가 제일이라고 추천했다. 그러면서 관중은 覇王(패왕)이 되려면 역시 자신을 등용해야 한다고 자신만만했다.
‘韓非子(한비자)’ 外儲說(외저설, 儲는 쌓을 저) 좌하에 실려 있다. 列子(열자)에 나오는 視死如生(시사여생)도 죽음을 삶과 같이 보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똑 같다. 부를 가난과 같이 여긴다는 視富如貧(시부여빈)의 대구로 仲尼(중니)편에 등장한다.
사람이 죽은 후 비로소 평가가 제대로 된다는 蓋棺事定(개관사정)이란 말은 杜甫(두보)의 시구에서 왔다. 떵떵거리던 삶을 산 사람이 오명이 만대에 이르고 이름 없던 삶을 살다가 流芳百世(유방백세)인 사람도 있다.\xa0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구국선열들과 적과 싸워 목숨을 바친 전몰장병들은 후자의 사람들이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장병들을 자그마한 규정에 의해 섭섭하게 대우한 사례가 종종 드러난다. 특혜를 바란 희생은 아니라 해도 우대는 많이 할수록 좋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