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류격즙中流擊楫 -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들기다, 실지를 회복하려 사기를 북돋우다.
중류격즙(中流擊楫) -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들기다, 실지를 회복하려 사기를 북돋우다.
가운데 중(丨/3) 흐를 류(氵/7) 칠 격(手/13) 노 즙(木/9)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장병들의 士氣(사기)가 높아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늘을 찌를 듯한 士氣衝天(사기충천)의 군대가 있으면 아무리 강국이라도 넘보지 못한다. 훌륭한 장수는 부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상처까지 보듬는다는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 疽는 종기 저)의 인자함과, 함께 창을 베고 갑옷을 입은 채 잠을 자는 枕戈寢甲(침과침갑)의 자세를 가졌다면 무적이겠다.
여기에 이런 기개를 더하면 말할 것도 없다. ‘예부터 영원한 삶은 없는 법(人生自古誰無死/ 인생자고수무사), 나라 위한 단심 역사에 비추고 싶구나(留取丹心照汗靑/ 유취단심조한청).’ 중국 宋(송)나라 충신 文天祥(문천상)의 시 구절이다.
적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병사를 배로 인솔하고 강을 건넌다. 장수가 강 가운데서(中流) 노를 뱃전에 두들기면서(擊楫) 사기를 북돋운다. 東晉(동진)의 장수 祖逖(조적, 逖은 멀 적)의 이야기에서 나온 이 성어는 치욕을 갚고 실지를 회복하겠다는 기개를 나타낸다.
渡江楫(도강즙)이라 해도 뜻이 같은데 가슴에 품은 웅지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이 나오게 된 4세기 전후는 司馬炎(사마염)이 세운 晉(진)나라가 16년간의 내란인 八王(팔왕)의 난 끝에 이민족에 쫓겨 揚子江(양자강) 이남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피 끓는 젊은이 조적 등은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참상을 보고 실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당시의 元帝(원제, 재위 317~322)에게 북진을 주장했다. 큰 의욕이 없었던 왕의 명을 받자 조적은 군사를 모집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무기를 조달했다.
장강을 건너 북쪽으로 향하던 중 조적은 ‘뱃전에 노를 치면서 맹세했다(中流擊楫而誓曰/ 중류격즙이서왈)’. 중원을 편정하고 적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자 부하들도 용기백배했다. 이후 조적이 이끄는 병사들은 黃河(황하) 이남의 땅을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唐(당)의 房玄齡(방현령) 등이 지은 ‘晉書(진서)’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적의 침략에 굳건히 대항하고 쪼그라든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 장군들이 많았다. 隋(수)와 唐(당)의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乙支文德(을지문덕)이나 楊萬春(양만춘)에서 왜군의 야욕을 꺾은 조선의 李舜臣(이순신) 장군 등이다. 徐熙(서희)와 崔潤德(최윤덕) 장군 등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다.
이런 빛나는 장군들의 전통은 오늘도 잘 지켜지고 있을까. 단호하게 대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에게 바다에서 밀리거나 同族相殘(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게 양보만 하다간 아무리 노를 두들겨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