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종의 여인들 단경왕후 신씨 1편
■ 중종의 여인들 단경왕후 신씨 1편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의 첫째 왕비이자 신수근의 둘째딸이다. 열세 살 되던 해에 한살 연하의 중종과 혼인해 7년을 부부로 살았다. 겁 많고 소심한 중종은 신씨를 엄마처럼 의지했다. 반정(反正)이 일어나던 날, 박원종은 군사를 보내 중종(진성대군)의 집을 호위하게 했다. 아무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군사들이 들이닥쳐 집을 포위하자 중종은 두려움에 떨었다. 혹시 이복형인 연산군이 보낸 군사들이 아닐까하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만약 연산군이 군사들을 보냈다면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 고문할 것이 분명했다. 중종은 고문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겠다고 했다. 그때 신씨가 애써 말리며 말했다.
“군사들의 말 머리가 집을 향해 있다면 우리 부부가 죽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말 꼬리가 집을 향하고 말 머리가 밖을 향해 있다면 분명 우리를 호위하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알고 난 후에 죽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생사를 함께 하겠다는 신씨의 설득에 중종은 자살 소동을 멈췄다. 그 사이 신씨는 사람을 내보내 무슨 일인지 살펴보게 했다. 과연 말 머리가 밖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중종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날로 중종은 경복궁으로 들어가 왕이 되었다. 신씨 역시 중종을 뒤따라 입궁해 사실상 왕비가 됐다. 그런데 조선시대 왕비는 책봉의식을 거쳐야만 정식 왕비로 인정됐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중종 즉위에 뒤이어 왕비 책봉의식이 거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씨는 왕비에 책봉되지 못했다. 연산군의 측근(처남)으로 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신승선-아들(신수근), 딸(연산군의 아내)-신수근의 딸(중종의 아내 신씨)
중종반정을 일으키기 전에 유순정(柳順汀),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이 신수근에게 접근해서 연산군을 폐위하자는 의사를 전했다. 그런데 중종의 장인이기 전에 연산군의 처남이기도 한 신수근은 이런 제안을 거절하게 되고,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신수근은 반정군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중종은 반정 과정에서 아무런 기여가 없던 터라 발언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신씨를 왕비에 책봉하겠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반정 주역들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반정 다음날, 공신들은 신수근을 비롯한 연산군 측근의 자손들을 먼 지방으로 귀양 보내라고 요구했다.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종이 왕비 책봉을 거론하기는 어려웠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