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종의 여인들 문정왕후 2편
■ 중종의 여인들 문정왕후 2편
중종은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에게서 인종을, 제2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에게서 경원대군(명종)을 낳았다. 문정왕후는 딸만 넷을 낳고 31살에 드디어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왕자였다. 경원대군이 인종과 나이 차가 스무 살이나 나지만,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인종이 세자시절 동궁에 불이 난 사건과 인종이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죽었다는 설(說) 등이 나도는 걸 보면, 인종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될 것을 누구보다 바라던 문정왕후가 의심받을 만도 하다. 문정왕후는 형제들을 시켜 장경왕후의 외척 김안로가 자신(문정왕후)를 폐하려 한다는 밀고를 하여 김안로를 제거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중종의 두 계비(繼妃), 장경왕후 윤씨의 집안과 문정왕후 윤씨의 집안간의 대립은 막을 올렸다. 을사사화(乙巳士禍)의 불씨가 당겨진 것이다.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가 낳은 원자(元子:호)가 이미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던 터에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가 경원대군(뒤의 명종)을 낳자,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로(尹元老)·윤원형(尹元衡) 형제는 세자를 교체할 음모를 꾸미게 되었다. 이에 세자의 외숙인 윤임(尹任)은 세자를 보호하려 했다. 두 외척 간에 왕위승계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데 윤임 일파를 ‘대윤(大尹)파’, 윤원로·윤원형 형제를 ‘소윤(小尹)파’ 라고 했다.
인종은 원래 중종 시대의 외척간의 반목과 갈등 속에서 성장한 유약한 군주로, 죽은 자신의 어머니(장경왕후) 대신으로 새엄마인 문정왕후에게 효도를 다했지만 문정왕후의 야심을 꺽지는 못했다. 문정왕후의 뜻을 얻지 못함을 항상 상심하던 중 병을 얻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였다. 인종의 뒤를 이은 경원대군 명종은 12세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모후인 문정왕후가 수렴정치를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정권은 대윤파에서 소윤파인 윤원형에게로 넘어갔다. 문정왕후의 밀지를 받은 윤원형이 이기(李芑), 지중추부사 정순붕(鄭順朋) 등과 모의하여 명종의 보위를 굳힌다는 미명 아래 윤임 등의 대윤파 제거에 나섰다.
윤원형(소윤파)은 핵심 동조 세력과 결탁하여 형조판서 윤임, 이조판서 유인숙(柳仁淑), 영의정 유관(柳灌) 등 대윤파를 제거하려 했다. 중신회의를 통하여 위 3명의 죄상을 날조하여 아뢰고, 일단 윤임은 유배, 유인숙은 파직, 유관은 체차(遞差:교체)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홍문관을 비롯하여 양사의 사림파가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항의하자 이기 등은 3명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하고 반대하는 양사의 관원을 파직시켰다. 또 위의 3명을 역모로 몰아 귀양 보냈다가 죽이고, 이어 종친인 계림군도 관련되었다 하여 죽였으며 윤임을 동조하던 사림 10여 명을 죽임으로써 대윤파를 모두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것이 을사사화(乙巳士禍)이다. 명종의 외척 소윤파에 의해 인종의 외척이던 대윤파가 대거 제거당하는 화를 입은 것이다.
이 정치적 갈등의 한 가운데에서 권모술수를 행하던 문정왕후는 양주 회암사 절에 불공을 드리기 위해 간다고 찬물에 목욕재계하다가 감기에 걸려 허망하게도 65세에 돌아가셨다 하니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