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