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지심체요절 3편
■ 직지심체요절 3편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아직 미숙했던 고려시대에 중앙관청이 아닌 지방의 한 사찰이 전통적인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하여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글자모양이 다소 고르지 않고, 부족한 글자를 나무활자로 보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다소 조잡한 상태이다. 원래는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상권은 분실된 상태이고, 현재 하권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이 프랑스로 가게 된 경위는 1886년 한·프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했던 콜랭드 플랑시란 사람이 수집해 프랑스로 귀국할 때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은 이 책에 관한 우수성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사람인지도 모른다. 표지에다 ‘한국에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이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드플랑시는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간 대부분의 고서를 모교인 동양어 학교에 기증하였다.
그 후, 1911년 프랑스 경매에 180프랑(지금 돈 65만원 가량)에 이 책이 나왔을 때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다른 한국 책 80종은 사면서도 이 책은 사지 않았다고 한다.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구텐베르크보다 앞서서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그 가치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 골동품 수집상이었던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에게 넘어 갔고, 1950년 이 사람이 죽을 때의 유언에 따라 파리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중국과 일본 책 속에 파묻혀 있던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고(故) 박병선 박사에 의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박병선 박사는 1967년부터 1980년까지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박병선 박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전시할 책을 고르기 위하여 서고를 뒤지다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병선 박사가 발견한 《직지심체요절》 하권은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권이었다. 박병선 박사는 책을 살펴보던 중 마지막 장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내용을 발견했고, 1972년 드디어 《직지심체요절》이 ‘파리 책 역사 종합박람회’에 출품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것은 독일 구텐베르크가 제작한 성경책보다 100년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세계 출판역사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