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대첩 2편
■ 진주대첩 2편
왜군은 처음에 조선군이 전혀 전쟁에 대한 대비도 되어있지 않고, 임금은 피난가고 장수부터 병졸들까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기에 급급한 것을 보고,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제대로 된 저항 없이 파죽지세로 한양에 도착했고, 평양과 함경도까지 치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조선의 수도를 점령하고 임금만 사로잡으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임금이 왕성을 버리고 도주하여 그 뒤를 따라 추격하면서 전쟁은 길어지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의병(義兵)이라는 존재가 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의병이란 개념도 없었고, 도대체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군들도 경험이 생기고 요령이 생기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려가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의병들이 출몰하면서 육지의 보급로도 불안했다. 식량은 엄청난 양이 필요한데 보급은 시원찮고, 조선이 청야(淸野:식량을 모조리 없애버림)전술을 펼쳐서 그나마 있는 것도 치워 놓은 상황이라 현지조달도 어려워 배고픔은 도를 더해가고 싸울 힘도 없었다. 만만하게 봤던 조선의 저항은 날로 더해지고 피로도 더해졌다. 여기에 명군까지 개입하니 왜군의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처음 전쟁을 시작할 때가 늦봄∼초여름이었던 것이 한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늦가을에 접어 들었다. 찬바람이 일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 날씨로 산악지대나 북쪽에서부터 찬 이슬까지 내리니 겨울을 대비해야 했다. 문제는 한반도의 겨울은 일본에서 그들이 겪은 겨울보다 훨씬 춥고 가혹하다는 것이다. 일본군 수뇌부는 길어지는 전쟁에 날로 초조해져 갔다. 다가오는 겨울도 대비해야 하고, 돌아가고 싶어도 조선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일본군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놓였다. 이 상황에서 일본군은 돌파구가 필요했다. 겨울을 나며 버틸 수 있는 곡식과 물자가 풍부하고 그나마 따뜻한 곳. 지금까지 전쟁의 참화에서 온전한 지역. 그래서 일본군의 눈이 다시 향하게 된 곳이 바로 전라도였다.
일본군은 이미 전라도 침공을 여러 번 시도했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었고, 본진으로 삼은 금산(錦山)도 의병과 관군의 잇따른 공격을 받고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승리는 했으나 피해가 상당했고, 계속된 전투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이순신장군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힌 상황에서 전라도로 향하는 길은 두개가 남았는데, 하나는 함양 안의와 장수 사이의 험한 고갯길인 육십령이고, 또 하나는 큰 길을 따라 진주를 넘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이 둘 중에서 그래도 더 평탄하고 큰 길인 진주를 노리게 되었다. 일본이 진주를 노리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진주는 경상도의 전통적인 큰 고을이면서, 경상우도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면서 지리산과 남해를 통해 물산이 모이는 중심지이고, 큰 강을 끼고 넓은 평야와 구릉이 이어지는 곳이다. 진주를 넘으면 하동이 금방이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남원에 이어 전주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주에서 하동, 섬진강을 건너면 순천과 여수가 지척인데, 여수는 조선 수군의 중심지가 된 전라좌수영이 있으니 전략적으로도 충분히 노려볼 만 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