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 - 온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 - 온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일천 천(十/1) 메 산(山/0) 새 조(鳥/0) 날 비(飛/0) 끊을 절(糸/6)
산이란 산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바로 흰 눈에 덮여 만물이 숨죽이고 있다. 이런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연상하는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이다. 唐(당)나라의 명문장 柳宗元(유종원, 773~819)의 시 ‘江雪(강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명구다.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은 친구 韓愈(한유)와 함께 고문운동을 일으켜 함께 韓柳(한류)라고도 불린다.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풍자적인 글도 빼어나지만 자연 속의 정경을 노래하여 陶淵明(도연명), 王維(왕유) 등을 이어받는 자연시파로 잘 알려진 시인이기도 하다.
오언절구로 짤막한 이 시의l 전문을 보자.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아 고요하고, 길이란 길엔 사람 자취 모두 끊겼네(千山鳥飛絶 萬逕人蹤滅/ 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외로운 배엔 도롱이와 삿갓 쓴 노인, 홀로 낚시하는데 추운 강엔 눈만 내리는구나(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고주사립옹 독조한강설).’ 逕은 길 경, 지름길 徑(경)과 통하는 글자, 蹤은 발자취 종, 蓑는 도롱이 사, 도롱이는 짚으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을 말한다. 천산과 만경은 물론 구체적인 수가 아닌 많은 수를 형용한 것이다.
폭설이 내린 산하에 새도 날지 않고 오가는 사람도 없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삿갓에 도롱이를 두른 노인이 작은 배를 타고서 낚시를 한다.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는 이런 시가 詩中有畫(시중유화)가 된다. 이런 정경도 뛰어나지만 끊기고 소멸되었다는 絶(절)과 滅(멸) 두 글자에 주목하면 시인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유종원은 혁신정치 집단에 참여했다가 실패하여 지방을 전전하며 울분을 달랬다. 그래서 공허한 세상을 등지고 폭설에 의한 끝없는 정적의 세계로 침잠하려는 의지가 구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유종원이 이 시를 지은 곳은 瀟湘八景(소상팔경)으로 알려진 강 상류의 永州(영주)라는 곳이라 한다. 본의는 아니지만 지방으로 좌천되었어도 이겨내고 명편을 남겼다. 은퇴를 하거나 또는 사업에 실패하여 복작거리는 도시를 떠나 낙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잘 나가던 때와 비교하면 현재의 생활은 서럽다. 지나간 세월을 잘 되살리며 천산을 감상하고, 또 하고 싶었던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