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봄 춘(日/5) 올 래(人/6) 아닐 불(一/3) 닮을 사(亻/5) 봄 춘(日/5)
절기로는 봄이 왔어도(春來) 날씨가 계속 추워 봄 같지가 않을 때(不似春) 흔히 쓰는 성어다. 봄이 왔지만 날씨보다 마음이 아직 더 추워 봄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내기도 하는 쓰임이 많은 말이다. 이 성어의 유래를 보면 더욱 안타까운 감정이 느껴지는데 중국 4대 미인인 王昭君(왕소군)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4대 미인은 西施(서시), 초선(貂蟬), 楊貴妃(양귀비)와 함께 왕소군을 든다.
前漢(전한)의 元帝(원제)때 전국서 모집한 후궁들 중에 절세의 미인 왕소군도 끼어 있었다. 왕은 당시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匈奴(흉노) 족을 달래기 위해 반반한 궁녀를 單于(선우, 족장을 높여 이를 땐 단이 아닌 선으로 읽음)에 시집보내기로 하고 궁중화가에게 후보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대부분의 후궁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화공 毛延壽(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청탁하기 바빴다. 그러나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 왕소군은 화공을 찾지 않아 가장 못나게 그려졌다. 황제는 가장 추한 후궁을 뽑아 오랑캐 땅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왕소군이 떠나는 날 실물을 보게 된 원제는 뒤늦게 절색임을 알아보고 화가 나 화공을 참형하고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漢(한)나라를 떠난 왕소군의 사연은 ‘漢書(한서)’와 ‘後漢書(후한서)’ 등의 사서에는 간략하게 언급되었어도 ‘西京雜記(서경잡기)’ 등 많은 문학양식을 통해 이야기가 보태져 재창조됐고 후대의 李白(이백) 盧照隣(노조린) 등 시인들에게도 좋은 소재가 되어 많은 동정의 시를 남겼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