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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7일 일요일

춘추필법春秋筆法 - 비판적이고 엄정한 역사 서술법

춘추필법春秋筆法 - 비판적이고 엄정한 역사 서술법

춘추필법(春秋筆法) - 비판적이고 엄정한 역사 서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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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춘(日/5) 가을 추(禾/4) 붓 필(竹/6) 법 법(氵/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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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을 아울러 부르는 春秋(춘추)는 물론 어른의 나이를 높여 부른 말이다. 孔子(공자)가 자신의 출생국인 東周(동주)시대 魯(노)나라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편찬한 史書(사서)의 이름이기도 하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란 명칭을 낳은 이 책은 공자가 태어나기 근 200년 전인 노나라 隱公(은공) 원년부터 242년의 기록을 정리했다.

유가의 五經(오경)에 드는 ‘춘추’란 이름은 노나라 역사를 맡은 직책이라는데 공자가 여러 자료를 모으면서 대의명분을 밝혀 기술하는 원칙(筆法)을 지켰기에 사필의 준엄한 원칙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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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시대는 춘추시대 말기로 周(주)왕실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후국들이 서로 覇者(패자)가 되려 下剋上(하극상)이 잦았다. 이런 혼란상을 보면서 저마다의 직분을 바로잡기 위해 1만 6500여 자의 춘추에 객관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하되 치우친 비판을 삼갔다. 직분을 바로잡는 正名(정명)과 선악을 엄격히 하는 褒貶(포폄)의 원칙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려 사용했다.

사람을 죽인 사실도 대상이나 명분에 따라 弑(시)와 殺(살)을 가려 기술하는 식이었다. 공자가 춘추에 대해 자부했다는 말이 ‘史記(사기)’에 나온다. ‘후세에 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고, 나를 욕할 사람이 있어도 역시 춘추 때문일 것이다(後世知丘者以春秋 而罪丘者亦以春秋/ 후세지구자이춘추 이죄구자역이춘추).’ 丘는 공자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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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三傳(춘추삼전)이란 말이 있다. 춘추의 주석서 중에서 잘 알려진 3종의 책이다. 공자의 춘추가 엄격한 용어 선택에 간략한 내용이라 수많은 학자들이 주석서를 냈는데 左氏傳(좌씨전), 公羊傳(공양전), 穀梁傳(곡량전)이 그것이다. 齊(제)나라의 公羊高(공양고)가 지은 공양전과 魯(노)의 穀梁俶(곡량숙)의 곡량전은 경문의 해석 중심이고, 역시 노나라의 左丘明(좌구명)이 편찬한 좌씨전은 사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중심으로 했다고 한다. 春秋學(춘추학)이라 할 정도로 이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했다는데 사학적 가치가 높은 좌씨전이 훨씬 더 많이 연구되어 우세를 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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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의 이런 필법을 가장 잘 지켰다고 공자가 평가한 사람이 董狐直筆(동호직필)의 사관 董狐(동호)였다. 晉(진)의 靈公(영공)이 포악하여 시해됐을 때 재상인 趙盾(조돈, 盾은 방패 순, 사람이름 돈)이 막지 않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썼다. 秉筆直書(병필직서)란 말을 남긴 齊(제)나라 太史(태사) 伯(백)등 4형제도 권신 崔杼(최저)의 죄상을 목숨을 걸고 기록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不偏不黨(불편부당)을 사시로 내세우는 언론사가 많다. 최근의 사건 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의 정신이 이러한데 종종 더 공정해야 하는 역사 교과서에서 편파논란이 일어난다. 승자 중심의 역사는 춘추의 필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